성적은 바닥을 찍었지만, 장부 속 숫자는 정반대였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영국 '데일리 메일'은 18일(한국시간) "맨유는 지난 시즌 리그 15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지만 구단이 공개한 2024-2025 회계연도 실적은 충격과 동시에 놀라움을 안겼다. 맨유는 무려 6억 6650만 파운드(한화 약 1조 2540억 원)의 수익을 올리며 구단 역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경기장 안팎의 상황이 극과 극으로 갈린 셈이다"라고 보도했다.
주요 원인은 구조조정이었다. 약 6개월 전 구단 지분을 인수한 짐 랫클리프 경은 “이 속도라면 2025년 말 맨유 자금은 바닥난다”라고 경고했다. 이후 단행된 300명의 대규모 인력 감축이 실제로 재무상 효과를 냈다. 맨유 보드진은 이번 실적을 “구조조정의 성과”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전통과 상징성을 지닌 구단이 단순한 ‘기업 논리’에 종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구단은 티켓 판매와 상업적 수익에서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메인 스폰서 ‘스냅드래곤’과의 계약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경기장 성적이 기대 이하임에도 브랜드 파워와 상업적 흡인력으로 수익을 끌어올린 것이다. 팬심은 흔들려도 맨유의 상업적 가치는 여전히 유럽 최고 수준임을 입증했다. 맨유는 기업 성과를 평가하는 핵심 지표인 EBITDA(세금·이자·감가상각 차감 전 영업이익)에서도 코로나19 이후 유럽 내 어떤 구단보다 높은 1억 8250만 파운드(약 3400억 원)를 달성했다
데일리 메일은 "보드진은 이러한 상업적 성과에 대해서 맨유라는 브랜드의 힘을 증명하는 수치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은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 이 수치들은 6월 말까지의 기준이다.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 브라이언 음뵈모, 마테우스 쿠냐, 벤야민 세슈코, 디에고 라멘스를 영입하는 데만 2억 파운드(약 3700억 원)를 썼다"고 설명했다.

이 매체는 "재무 지표에 이 지출이 반영된다면, 내년 보고서는 사뭇 다른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맨유는 지난해에도 1억 1320만 파운드(약 2100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번 시즌 역시 부진이 이어진다면 스폰서와 상업적 가치 역시 타격을 피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성적 부진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단은 아모림 감독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지만, 리그 4경기에서 승점 4점에 그치며 33년 만의 최악의 출발을 보였다. 리그컵에서는 4부 리그 그림스비 타운에 충격 패로 탈락했다. 팬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이유다.
맨유는 오랫동안 ‘축구 클럽’과 ‘기업 브랜드’라는 두 정체성을 동시에 지녀왔다. 그러나 지금은 경기장 성적과 재무 성적 사이의 괴리가 극단적으로 커지고 있다. 재정적으로는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지만, 그라운드에서는 EPL 중하위권 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결국 핵심은 성적 회복이다. 아무리 스냅드래곤 효과와 티켓 파워가 커도, 팀이 몰락하면 상업적 가치도 오래가지 못한다. 맨유 보드진이 강조하는 EBITDA는 단기 지표일 뿐, 팬심이라는 장기 자산은 무너지고 있다.
유럽 축구사의 상징이자 EPL의 간판 브랜드였던 맨유. 지금의 아이러니는 단순한 ‘일시적 부진’으로 치부하기에는 위험하다. 구단 재무는 사상 최고, 팀 성적은 사상 최악. 이 극단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맨유는 결국 잔혹한 현실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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