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라클’ 박위와 송지은이 오랜 시간 함께한 인연을 떠나보내며 이별의 눈물을 쏟았다.
22일 유튜브 채널 ‘위라클’에는 ‘내가 한국을 떠나는 이유’라는 제목의 새로운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에서 박위는 2025년 7월말 서울 왕십리의 한 아파트를 방문했다. 박위가 만난 사람은 다름아닌 전 편집자 박진성 씨로, 두 사람은 머리를 자른 부분 등 사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며 근황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가도 박위는 “마비된 지 8년 됐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다”면서 불균형한 다리 포지션을 지적했고, 진성 씨는 대수롭지 않게 박위의 잔소리를 넘겼다. 그럼에도 박위는 소변, 냉장고 정리 등 잔소리를 폭격했다.

진성 씨는 “다친 지 햇수로 8~9년 정도 됐다”고 말했다. 박위는 “처음에 병원에서 만났을 때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 강연에서 사진이 매번 나오는데 그때 진짜 사진 찍기 싫었는데 찍은거냐”고 말했고, 진성 씨는 “맞다. 그때는 손, 다리 안 움직이고 목에 보호대도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사진 찍으라고 하니까 기분이 별로였다”고 회상했다.
박위는 “헤어지고 나서 비행기 타기 전까지 시간이 좀 있어서 아버지가 울산 바다 보여주시겠다고 승합차로 드라이브를 하는데 자몽에이드를 꽂아주셨는데 표정이 너무 안 좋으셨다. 이후 진성이가 신촌에 왔을 때는 아버지 표정이 너무 좋아지셨다. 희망을 갖기 시작하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진성 씨는 “그때만 해도 휠체어 타고 병원 밖으로 안 나갈 거라고 생각했고, 박위와 나는 상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고 이야기했다.

진성 씨는 박위에 대해 “위험한 사람”이라며 “형이 병원에 친구들과 함께 와서 나를 데리고 나갔다. 간호사 분들에게 이야기도 안 했는데 자기 옷 가져와서 갈아 입히고 데리고 나갔다. 그래서 대형 쇼핑몰에 갔는데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라 꿈꾸는 줄 알았다. 박위처럼 휠체어 타는 모습에 당당할 수 있다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고 말했다. 특히 진성 씨는 “휠체어 탄 사람이 저 포함해서 4~5명 정도 되는데 박위가 자동차로 트랜스퍼하는 거 보여주고, 바지 내려서 소변줄 이용한 자가도뇨하는 거 보여주고 그랬다”고 말했다.
특히 진성 씨는 “당시 박위가 다 잘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다친 지 3년 정도 됐을 때였다. 나한테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처음 해보는 거라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내게 보여준 거라고 생각했다. 이후 사회로 나오면서 부터는 관점이 바뀌었다. 안 움직이는 것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위라클’을 함께 한 박위와 진성 씨. 진성 씨는 “‘위라클’을 안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도 만나고 경험들도 하면서 나도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꿈을 키워서 ‘위라클’은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으로떠나게 된 진성 씨는 내년 6월까지의 계획을 소개했다. 박위는 “미국 간다고 하니까 나도 모르게 ‘혼자?’라고 했다.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다친 지 얼마 안됐을 때 사람들이 내가 어디 가면 ‘혼자?’라고 했다. 그래서 그 말이 제일 듣기 싫다. 내가 너를 인생의 제자로 키워냈다면 이제는 청출어람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박위는 진성 씨에게 장학증서를 수여했다. 진성 씨는 “21살에 사고가 나고 박위를 만나고 ‘위라클’을 하고 꿈을 키워서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가게 됐는데 장학금도 전달해주셔서 조금 더 경제적인 걱정 없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움의 손길들 잊지 않고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서 저도 세상에 그런 손길 흘려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진성 씨는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혼자의 다리 힘으로 선 모습을 보여줘 감동을 안겼다.

박위는 아내 송지은과 함께 진성 씨를 배웅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송지은과 박위는 진성 씨를 떠나보내며 울컥한 듯 눈시울이 붉어졌다. 송지은은 “꼭 남아있는 사람들이 운다”면서 눈물을 닦았고, 박위는 “‘위라클’의 처음을 함께 한 진성이가 새로운 도전을 한다”며 응원을 부탁했다. /elnino8919@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