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데뷔 30주년을 앞두고 뜻밖의 예능 DNA가 폭발한 한상진. SBS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그동안 '하얀거탑', '이산', '솔약국집 아들들', '뿌리깊은 나무', '마의', '육룡이 나르샤', '지옥에서 온 판사' 등 히트작에서 선 굵은 연기로 사랑 받았는데, 최근 예능에서 눈에 띄는 활약이 돋보인다. '핑계고', '아는 형님', '놀면 뭐하니',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첫 웹예능 '부산댁 한상진'까지 론칭하면서 어느 때보다 바쁘게 지내는 중이다.
요즘 스케줄이 부쩍 늘어났지만, 정작 서울에는 집이 없다. 2004년 여자 농구계 레전드 박정은 선수와 결혼한 그는 아내가 현역 은퇴 후 여자 프로팀 '부산 BNK 썸'의 감독이 되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출퇴근하고 있지만, 힘든 기색 하나 없었다. 남들 눈에는 '왜 사서 고생할까'로 보일 수 있지만,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라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삶 전체에 가득했다.
한상진이 부산에 집을 구한 이유는 간단하고 명료했다. 그는 "내 직업은 비교적 움직일 수 있는 직업이다. 서울과 멀어지면 분명 힘든 점이 있지만, 내가 잠을 줄이면 충분히 부산에 살아도 서울에서 일할 수 있다. 잠은 포기하면 되지"라며 "다 계산하고 시뮬레이션 했을 때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된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당연하게 부산으로 내려왔다. 난 아내가 농구장에 있는 게 너무 좋다"고 했다.
이어 "부산에서 월급을 받으면 그 지역에서 돈을 써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돈을 쓰면 이상하지 않나. 단 이 부분은 개인의 생각이자 선택이다. 누군가는 아이들 교육 문제도 있고, 이동하기 힘든 사정도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부산에서 돈을 받았으니 이곳에서 살자고 했고, 그런 의미로 얘기했는데 그 말이 멋있게 포장됐다"며 쑥스러워했다.
지난달 JTBC '아는 형님'에는 한상진♥박정은 부부가 동반 출연, 큰 주목을 받았다. 박정은 감독은 남편 못지않은 입담을 자랑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상진은 "와이프가 나보다 예능 섭외가 더 많이 들어왔다. '내가 우승하면 예능을 가리지 않고 딱 3개만 한다'고 해서 '남창희 실비집' '아는 형님' '전참시'만 출연했다. 그 이후에는 본업이 감독이니까 더 이상 안 하겠다고 하더라"며 "사실 나 때문에 전화받는 것보다 아내의 섭외를 거절하는 게 더 많았다. '상진아~ 와이프 출연 한번 안 되냐?'고 부탁하시는 분들이 많더라. 와이프는 방송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지금은 본업에 충실하고 싶어 한다. 팀을 위해서 감독 역할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아내의 선택을 존중했다.
"아내 숙소에 있으니 부산에서도 얼굴 보기 힘들 것 같다"는 말에 "서울 살 때보다 더 못 보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부산 숙소에 간식도 갖다주고 여전히 '빵셔틀 역할'을 제대로 한다"며 웃었다.
현재 박정은 감독은 친고모이자 '한국 여자농구의 전설' '여자농구 최초의 슈퍼스타' 박신자컵 등을 준비하느라 정신없다고. 2015년 첫 대회를 시작한 박신자컵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으며, 2023년부터는 국제 대회로 확장돼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국가 클럽 팀들이 꾸준히 참가해왔다. 이번 대회에는 최초로 스페인과 헝가리 등 유럽 국가 클럽 2개 팀이 출전한다.
박신자컵은 오는 30일부터 내달 7일까지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데, 한상진도 참석해 가족으로 힘을 보탤 예정이다.


연기 잘하는 배우, 예능 늦둥이, 여기에 '영화감독 한상진'으로도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다. 2015년 첫 연출 데뷔작 'Gone'을 비롯해 '북성로 히어로'(2019), '북성로 히어로 두번째 이야기'(2020), 신작 단편영화 '비보'(2024)까지 총 4편을 완성했다.
'비보'는 베트남 혼혈 소녀 보바와 한국 소녀 수연의 우정을 통해 '누군가에겐 작은 일이, 누군가에겐 삶과 죽음을 가늠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선(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감성 드라마다. 파리, 뉴욕, 피렌체, 할리우드 등 세계 각지 영화제에서 작품성과 메시지를 동시에 인정받으며 Hollywood Gold Awards: Drama 부문, Gold Award, Paris Film Awards: Short Film 부문, Silver Award, New York Movie Awards: Short Film 부문, Silver Award. Florence Film Awards: Best Drama 부문 수상 등 해외 영화제 9관왕을 달성했다.
그는 "배우 한상진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큰데, 영화감독으로서 쉬지 않고 뭔가를 계속하고 있다. 이제는 제작사에서 장편을 연출하자고 제안하더라"며 "단편은 작업 기간이 다섯 달 걸렸는데, 장편은 1년 넘게 걸린다. 1년 6개월은 이것만 해야 되는데 연출하자고 책을 줘서 고민 중이다. 만약 하게 된다면 정말 잘하고 싶다. 원래 한 끗 차이가 완성도를 결정하니까"라고 덧붙였다.
/ hsjssu@osen.co.kr
[사진] 빌리언스, JTBC 제공, '비보'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