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살아날 줄 알았다. 지난겨울 프로야구 FA 투수 중 가장 큰 계약으로 ‘최대어’ 대우를 받고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은 사이드암 엄상백(29)이 전반기가 다 끝나가는 상황에서도 단 1승에 그치고 있다. 이 정도면 활용법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엄상백은 3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2025 신한 SOL Bank KBO리그 NC 다이노스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 3⅔이닝 5피안타 2볼넷 1사구 1탈삼진 3실점으로 조기 강판됐다. 지난 4월18일 대전 NC전에서 시즌 첫 승을 거둔 뒤 76일, 10경기째 승리를 추가하지 못했다.
전 소속팀 KT 시절부터 꾸준히 강세를 보인 NC를 상대로 시즌 2승에 다시 도전했지만 1회부터 꼬였다. NC 1번 김주원에게 바깥쪽 낮은 체인지업을 공략당해 우전 안타를 맞고 2루 도루를 허용하더니 손아섭에게 볼넷을 줬다. 박민우의 2루 땅볼로 이어진 1사 1,3루에서 오영수에게 우전 적시타를 맞으며 선취점을 내줬다. 풀카운트에서 던진 체인지업이 바깥쪽 높게 들어가면서 적시타로 이어졌다.
계속된 1사 1,3루에서 더블 스틸로 추가 실점한 엄상백은 박건우도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으로 1루에 내보냈다. 김휘집을 중견수 뜬공, 서호철을 2루 땅볼 처리하며 이닝을 마치긴 했지만 1회에만 34개의 공을 던지며 진땀을 흘렸다. 풀카운트 승부만 세 차례로 NC 타자들과 승부에 어려움을 겪었다.

2회에는 김주원에게 안타를 하나 맞았지만 나머지 세 타자를 아웃 처리한 엄상백은 3회 공 7개로 삼자범퇴하며 안정을 찾는 듯했다. 투구수 관리가 이뤄지며 무난하게 5회까지 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4회를 버티지 못했다.
선두타자 김휘집에게 우전 안타를 맞은 뒤 서호철의 희생번트로 이어진 1사 2루. 김형준에게 1~2구 연속 파울로 투스트라이크를 선점했으나 3구째 몸쪽에 붙인 투심 패스트볼이 왼팔을 맞혔다. 1,2루로 주자를 쌓은 엄상백은 한석현을 헛스윙 삼진 돌려세웠으나 김주원에게 중견수 오른쪽에 떨어지는 1타점 2루타를 맞았다. 풀카운트에서 존 안에 넣은 슬라이더를 김주원이 놓치지 않았다. 김주원 타석 전 피치컴 작동이 되자 않아 투구 리듬이 끊긴 게 아쉬웠지만 그걸 핑계로 삼기엔 이날 엄상백의 내용이 좋지 않았다.
3점째를 주며 2사 2,3루 위기가 이어졌다. 좌타자 손아섭 타석에서 김경문 감독은 투수 교체 카드를 꺼냈다. 투구수가 72개밖에 되지 않았지만 득점권 주자가 2명이 있는 상황이라 과감하게 교체가 이뤄졌다. 좌완 조동욱이 대타 맷 데이비슨을 2루 뜬공 잡고 이닝을 끝내면서 투수 교체는 성공했고, 엄상백은 3실점으로 끝났다.

총 투구수 72개로 투심 패스트볼(33개), 체인지업(17개), 커브(16개), 직구(5개), 커터(1개)를 던졌다. 투심 패스트볼 구속은 최고 시속 148km, 평균 145km로 나쁘지 않았지만 전체적ㅇ로 제구가 좋지 않았다. 유리한 카운트를 잡고도 체인지업, 슬라이더가 밋밋하게 들어가면서 타자들 배트에 맞았다. 경기 초반 체인지업을 맞자 슬라이더 비중을 높였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날까지 엄상백의 시즌 성적은 14경기(60⅔이닝) 1승6패 평균자책점 6.23 탈삼진 55개 WHIP 1.70 피안타율 3할1푼7리. 풀타임 선발로 자리잡은 2022년 이후 최근 4년 통틀어 모든 면에서 최악이다. KT 시절에는 계산이 서는 4~5선발로 이닝 소화력을 보여줬지만 한화에선 영 아니다. 5회를 못 던지고 내려간 것이 7경기로 엄상백이 나오는 날 한화 불펜 소모도 크다. 3실점 이하 선발을 6회 이전에 교체하는 ‘퀵후크’도 5경기나 된다. 한화 불펜이 강하기 때문에 퀵후크가 잦은 면도 있지만 엄상백에 대한 벤치의 믿음도 커 보이지 않는다.
5월 중순 2군에 내려가면서 보름간 조정 시간도 보낸 엄상백이지만 1군 복귀 후 6경기 2패 평균자책점 5.72로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한화로선 엄상백의 활용법 변화도 고민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류현진, 문동주가 빠진 기간 대체 선발로 경쟁력을 보여준 황준서라는 선발 카드도 있다. 1위 싸움 중에 엄상백이 지금 같은 모습을 계속 보이면 가뜩이나 지친 불펜이 더 크게 소모된다. 몸값이 비싼 FA 투수라 선발로 안 쓰는 게 아까울 수 있지만 1위 싸움을 하는 지금의 한화는 그 무엇보다 승리, 이기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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