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FA 시장, 지금껏 이런 적이 없었다. 계약 총액으로 따지면 올해보다 더 광풍이 몰아친 해들이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기존 상식을 깨는 대형 계약들이 쏟아지면서 시장이 크게 들썩이고 있다.
지난 6일 KBO리그 FA 시장이 열린 뒤 6일의 시간이 흘렀다. 총 20명의 선수들이 FA 신청을 한 가운데 벌써 8명의 선수들이 도장을 찍었다. 어느 때보다 빠르게 속도전으로 흐르는 FA 시장인데 계약 내용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FA 개장 전부터 예년과 다른 분위기였다. 1987년생으로 내년이면 38세가 되는 베테랑 내야수 최정(SSG)이 FA 최대어로 평가됐다. C등급으로 보상선수가 붙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 나이에 최대어 대우를 받는 선수가 지금껏 없었다.
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지난여름부터 다른 팀에서 최정을 노린다는 소문이 나왔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SSG도 잔류에 총력을 기울였다. FA 신청을 하기도 전에 최정 측과 미리 합의를 본 SSG는 초유의 계약을 예고했다. FA 시장이 열린 지난 6일 4년 110억원 대형 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계약금 30억원, 연봉 총액 80억원. 옵션이 하나도 붙지 않은 전액 보장 계약이었다.
종전 3차 FA 최고액 계약이었던 2022년 삼성 포수 강민호의 4년 36억원을 무려 3배 이상 뛰어넘는 조건이었다. 38세 시즌을 앞두고 100억원 이상 계약을 성사시킬 선수가 또 나오긴 쉽지 않다. 앞서 두 번의 FA 계약(4년 86억원, 6년 106억원)보다 더 큰 계약을 따내는 것도 어렵다. 나이가 무색할 만큼 꾸준함을 보여준 최정이라 ‘오버페이’ 논란은 없지만 대단히 파격적인 계약으로 남을 것이다.
최정이 스타트를 끊은 FA 파격 시리즈는 심우준(29)이 이어받았다. 한화는 지난 7일 내야수 심우준과 4년 최대 50억원(계약금 24억원, 연봉 총액 18억원, 옵션 8억원)에 깜짝 계약했다. 김경문 한화 감독이 심우준을 원했고, 한화도 발 빠르게 움직여 영입했다.
심우준은 1군 9시즌 통산 1072경기 타율 2할5푼4리(2862타수 726안타) 31홈런 275타점 403득점 156도루 OPS .639를 기록했다. 2019년 2할7푼9리가 개인 최고 타율이고, 홈런은 2021년 6개가 최다 기록이다. 전형적인 수비형 유격수로 수비, 주루에 특화된 선수다.
지금까지 50억원 이상 받은 FA 유격수는 2017년 두산 김재호(4년 50억원), 2023년 롯데 노진혁(4년 50억원), 2024년 LG 오지환(6년 124억원) 그리고 심우준까지 4명에 불과하다. 김재호, 노진혁, 오지환에 비해 타격 성적이 크게 처지는 심우준이지만 아직 만 20대로 나이가 가장 젊다. 원소속팀 KT에서도 최대 46억원까지 제시할 만큼 심우준의 가치를 높게 봤고, 한화는 더 높은 금액으로 잡았다.
최정과 심우준에 이어 장현식(29)이 FA 파격 시리즈의 정점을 찍었다. LG는 지난 11일 우완 투수 장현식과 4년 52억원에 계약했다. 계약금 16억원, 연봉 36억원으로 전액 보장 조건이었다. 마무리가 아닌 불펜, 즉 중간투수로는 2015년 삼성 안지만(4년 65억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 큰 계약. 안지만 외에는 중간투수로 40억원 이상 계약을 한 선수도 없었다.
장현식은 2013년 NC에서 데뷔한 뒤 2020년 시즌 중 KIA로 옮겨 올해까지 11시즌 통산 437경기(30선발·592이닝) 32승36패7세이브91홀드 평균자책 4.91 탈삼진 520개를 기록했다. 2021년 홀드왕(34개)에 올랐고, 올해도 핵심 필승조로 던지며 KIA 통합 우승에 기여했지만 통산 4점대 후반 평균자책점으로 특급은 아니다. 올 시즌 평균자책점도 3.94로 4점대에 가까웠다.
하지만 극심한 타고투저로 대부분 팀들이 불펜난에 시달렸다. KBO리그 특성상 성적을 내려면 불펜이 필요했고, 내구성이 좋은 장현식의 가치도 치솟았다. 원소속팀 KIA를 포함해 4개 팀에서 경쟁이 붙었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며 대박 계약으로 이어졌다.
기존의 틀을 깨는 계약들이 쏟아지면서 한화 투수 엄상백(4년 78억원), 롯데 투수 김원중(4년 54억원), KT 내야수 허경민(4년 40억원) 등 규모가 큰 나머지 FA 계약들이 합리적으로 보일 정도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이런 파격 계약들이 쏟아지는 것일까. 한 야구 관계자는 “올해 1000만 관중으로 10개 구단이 전부 흑자다. 구단들 수입이 늘었고, 샐러리캡도 증가했다. 쓸 수 있는 돈이 많아졌으니 시장에 돈이 풀린 것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야구인은 “그만큼 쓸 만한 선수가 부족해서 그런 것 아니겠냐”며 리그 전체적인 선수난이 부른 현상이라고 봤다.
둘 다 맞는 말이다. KBO리그의 한정적인 선수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국내 스포츠 사상 첫 1000만 관중 시대를 열면서 전 구단 수입이 크게 늘었고, 지난 8월 KBO 이사회에서 경쟁균형세로 이름을 바꾼 샐러리캡도 20% 증액된 137억1165만원으로 상향됐다. 유동성 확대는 필연적으로 인플레를 부르고, 올해 FA 시장은 누가 나와도 큰돈을 손에 쥘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예년에 비해 특A급 FA가 없었고, 노장이나 중간급 선수들이 그 수혜를 입었다. 한마디로 이번 FA들이 돈복 있는 선수들인 것이다.
11.06 우규민 KT 재계약, 2년 7억원(계약금 2억원, 연봉 총액 4억원, 옵션 1억원)
11.06 최정 SSG 재계약, 4년 110억원(계약금 30억원, 연봉 총액 80억원)
11.07 심우준 KT→한화 이적, 4년 50억원(계약금 24억원, 연봉 총액 18억원, 옵션 8억원)
11.08 엄상백 KT→한화 이적, 4년 78억원(계약금 34억원, 연봉 총액 32억5000만원, 옵션 11억5000만원)
11.08 허경민 두산→KT 이적, 4년 40억원(계약금 16억원, 연봉 총액 18억원, 옵션 6억원)
11.10 김원중 롯데 재계약, 4년 54억원(계약금 12억원, 연봉 총액 32억원, 옵션 10억원)
11.10 구승민 롯데 재계약, 2+2년 21억원(계약금 3억원, 연봉 총액 12억원, 옵션 6억원)
11.11 장현식 KIA→LG 이적, 4년 52억원(계약금 16억원, 연봉 총액 36억원)
= 8명 계약 총액 412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