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외야수 김헌곤(36)의 올 시즌 시작점은 지난 4월6일 광주 KIA전이었다. 당시 4-4 동점으로 맞선 9회 1사 3루에 대타로 나온 김헌곤은 전상현에게 좌중간 빠지는 1타점 2루타를 치며 결승타의 주인공이 됐다. 이튿날 KIA전에는 시즌 첫 선발로 나서 4-3으로 앞선 8회 솔로포로 마수걸이 홈런을 신고했다.
앞서 2년간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며 2군에 머문 시간이 길었던 김헌곤은 당시 광주 원정에서 긴 침체에서 벗어났다. 그 기세를 이어가 올 시즌 117경기 타율 3할2리(281타수 85안타) 9홈런 34타점 OPS .792로 반등에 성공하며 삼성의 정규리그 2위에 기여했다. 특히 KIA전 15경기 타율 4할4리(47타수 19안타) 3홈런 8타점 OPS 1.089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한국시리즈(KS)에서도 KIA를 상대로 한 방을 쳤다. 지난 21일 열린 KS 1차전에서 6회초 KIA 선발투수 제임스 네일의 5구째 바깥쪽 낮게 들어온 시속 134km 스위퍼를 밀어쳐 우측 폴 안에 들어오는 솔로포로 연결했다. 비거리 110m 선제 솔로포. 0의 균형을 무너뜨린 한 방이었다.
김헌곤의 홈런이 터지기 전까지 네일은 삼성 타선을 압도했다. 1회, 3회 수비 실책에도 흔들리지 않고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준 네일은 최고 시속 150km, 평균 147km 투심 패스트볼에 결정구로 강력한 스위퍼를 적극 활용했다. 5회까지 6개의 삼진을 잡았는데 전부 스위퍼로 이끌어낸 것이었다. 좌타자 바깥쪽, 우타자 몸쪽으로 백도어성 스위퍼까지 구사해 삼성 타자들이 좀처럼 대응하지 못했다.
김헌곤도 1회 무사 1루에서 2루 땅볼, 3회 1사 3루에서 투수 땅볼로 네일에게 막혔다. 특히 3회에는 네일의 바깥쪽 스위퍼에 타이밍을 빼앗겨 득점권 기회를 날렸다. 그런데 6회 네일의 스위퍼를 기가 막히게 밀어쳤다. 바깥쪽 낮게 잘 제구된 공이었지만 궤적을 노리고 세게 받아친 김헌곤의 스윙에 회전이 걸린 타구가 두둥실 뻗어나가 우측 담장을 넘어갔다.
계속된 6회초 무사 1,2루 삼성 공격에서 우천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된 가운데 김헌곤의 홈런은 1차전의 유일한 득점 장면으로 남아있다. 22일로 미뤄진 서스펜디드 게임이 그라운드 사정과 비 예보로 하루 더 순연된 뒤 취재진을 만난 김헌곤은 “상대 투수 공이 너무 좋았다. 두 번째 타석에서 득점권 찬스를 못 살렸기 때문에 반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다행히 3번째 타석에서 결과가 나왔다”며 웃었다.
홈런 상황에 대해 김헌곤은 “사실 네일이 던지는 공을 다 생각하고 치기가 불가능하더라. 그래서 코스와 생각한 구질이 있었는데 그게 왔다. 잘 맞긴 했는데 파울이 될까봐 걱정했다. 다행히 휘어나가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서 좋았다”고 설명했다. 이날 마구처럼 강력한 위력을 떨친 네일의 스위퍼였지만 김헌곤의 노림수가 제대로 적중했다.
정규시즌에 이어 KS에서도 KIA에 강한 면모를 이어간 김헌곤은 “솔직히 그런 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크게 의식하는 것은 없는데 이상하게 뭔가 하고 나면 KIA전인 경우가 많더라”며 스스로도 이런 상대성을 신기해했다.
사실 올 가을 김헌곤은 KIA한테만 강한 게 아니다. 앞서 LG와의 플레이오프(PO) 때도 4경기 타율 3할6푼4리(11타수 4안타) 2홈런 4타점으로 활약했다. 특히 2차전에서 5회, 7회 연타석 홈런을 터뜨리며 삼성의 10-5 완승을 이끌었다. 중심타자 구자욱이 PO 2차전에서 1회 도루를 하다 왼쪽 무릎을 다쳐 라인업에서 이탈했지만 김헌곤이 좌익수 자리에서 공백을 메우고 있다.
“모든 선수들이 자욱이뿐만 아니라 아픈 선수들의 공백을 나눠서 짊어지고 있다. 혼자서 부담을 떠안을 정도는 아니다”고 말한 김헌곤은 “정신없이 한 경기, 한 경기 하고 있다. 어떤 각오보다는 하루하루 그냥 들이대고 있다. KIA도 마찬가지겠지만 이기고 싶은 욕망이 양쪽 다 크다. 이기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순간순간 과정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더 절박한 팀이 이기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굳은 결의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