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화양연화(花樣年華)’ 꽃처럼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한 채 180도 바뀌어버린 삶을 받아들인 여인이 있다.
종합 건설기업 회장이었던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사모님에서 간병인이자 가장이 된 박지효(67) 씨. 남편의 사업 부채를 갚으려 해본 적도 없는 식당 장사에도 뛰어들었다. 사모님 시절의 모든 인연을 끊고 지낸 10년. ‘이 또한 지나가리’ 주문을 외웠던 지효 씨가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텃밭 일구기. 정신없이 흙을 만질 때는 잠시나마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인생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흙’과 함께 버텨온 시어머니를 본 김민주(34) 씨. 심리학을 전공한 민주 씨는 식물로 마음을 달래는 체험형 치유 농장을 만들어 지효 씨를 합류시킨다. 아들, 며느리, 귀여운 손녀와 친정어머니까지 한 지붕 4대로 북적거리던 지효 씨 가족. 거제에서 치과 치료를 하러 왔던 안사돈이 함께 살며 다섯 여자와 한 남자, 가족은 완성됐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대기업에 입사했던 아들 공림 씨. 고맙고 대견했던 녀석이 돌연 퇴사하고 집 지하실에 공방을 차려 민화 표구를 업으로 삼겠단다. 지효 씨가 취미로 했던 민화를 어깨너머로 본 탓일까. 제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도 욕심에 자꾸 아쉬움이 생기는 지효 씨다.
한때 민화에 푹 빠져 살았던 지효 씨가 안타까운 아들. 아들 며느리의 제안에 힘입어 12년 만에 붓을 들어본다.
2년 전, 긴 숨 한 번 내쉬고 조용히 떠난 남편. 10년을 몰아치며 살았는데 그토록 편안하게 떠나가는 이를 보니 다시 한번 인생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다. 비로소 멈춰있던 시간을 들여다볼 여유가 생긴 지효 씨. 애써 밀어냈던 사모님 시절 지인들과 해후하며 깊이 묻어뒀던 감정에 솔직해져 본다.
남편 간병으로 아들 며느리 결혼식을 올려주지 못한 것이 늘 마음의 숙제로 남아있었다. 둘째 손주가 태어나기 전 일사천리로 추진해 보는 가족. 손수 농장을 꾸미며 아들 부부를 위한 ‘특별한’ 결혼식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내 몸 같던 사람도 언젠가 나를 떠날 것이고 부(富)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덧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기와 슬픔을 견딘 지효 씨의 삶은 더욱 단단해졌다. 모든 것이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았던 가족을 지키려던 마음. 10년 전엔 몰랐던 인생의 묘미를 알게 된 지금, 훨씬 더 행복해졌다는 지효 씨. 그녀를 찾아온 ‘두 번째 화양연화’를 들여다본다. 오는 21일 오전 7시 50분 방송. /kangs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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