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토종 에이스’ 원태인(24)은 지난 7월 해외 배송으로 메이저리그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 유니폼을 구매했다. 등번호 17번, 오타니의 이름이 새겨진 다저스 흰색 홈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대구 홈구장 ‘라팍’에 출근했던 지난 7월20일 대구 롯데전에서 원태인은 4경기 만에 시즌 8승째를 거뒀다.
이날부터 원태인은 대구 홈에서 자신의 선발등판 날마다 오타니의 유니폼을 입고 출근하는 게 루틴이 됐다. 그날 이후 11경기에서 8승1패 거두며 데뷔 첫 15승으로 다승왕에 등극했다.
기분 좋은 루틴은 지난 15일 열린 플레이오프(PO) 2차전에서도 이어졌다. LG 강타선을 맞아 6⅔이닝 7피안타 2볼넷 3탈삼진 1실점 호투로 삼성의 10-5 완승을 이끌었다. 포스트시즌 데뷔 첫 선발등판 경기에서 첫 승을 따낸 것이다. 총 투구수 104개로 최고 시속 150km 직구(40개) 외에 커터(31개), 체인지업(27개), 슬라이더(4개), 커브(2개)를 구사했다.
경기 초반은 불안했다. 1회 선취점을 내준 뒤 2회에도 1사 2,3루 위기에 몰렸지만 김범석을 헛스윙 삼진, 홍창기를 좌익수 뜬공 처리하며 실점 없이 막았다. 위기를 넘기며 안정을 찾은 원태인은 7회 2사까지 막았다. 6-1로 앞선 7회 2사 1,2루에서 투구수 100개가 되자 박진만 삼성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왔지만 교체되지 않았다. “한 타자만 더 잡고 싶다”는 에이스의 의지를 존중해줬다.
원태인은 신민재에게 우전 안타를 맞아 2사 만루에서 강판됐지만 대구 홈 관중들의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원태인도 팬들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다음 투수 김윤수가 오스틴 딘을 유격수 땅볼 처리하며 실점 없이 만루 위기 정리했다.
2차전 데일리 MVP에 선정된 뒤 공식 인터뷰에 나선 원태인은 “홈에서 1~2차전을 잡고 잠실로 가는 게 목표였다. 1차전 선발 데니 레예스가 스타트를 잘 끊어줘 자신감을 갖고 경기에 들어갔는데 바라던대로 돼 기분이 좋다”면서 “너무 오랜만에 관중들이 들어온 경기라 초반에 힘이 넘쳤는데 정교함이 떨어졌다. 2회에도 거친 면이 있었는데 김범석 선수를 삼진 잡으면서 엉켜있던 게 풀렸다. 삼진 하나로 자신감을 찾았고, 시즌 때 내가 했던 피칭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7회 만루 위기에서 내려온 게 아쉬웠는데 김윤수가 막아준 것도 원태인에게 큰 짜릿함을 선사했다. 그는 “(황)동재, (김)윤수 형이랑 합숙 중인데 같이 보드 게임을 하는 멤버다. 어젯밤도 게임을 하면서 윤수 형에게 위기 상황이 오면 꼭 막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만루에서 내려갈 때 오스틴 선수 타석이라 윤수 형이 올라오겠구나 싶었다. 중요한 순간이었는데 상대방 흐름을 끊어주면서 우리가 승리를 굳힐 수 있었다. 윤수 형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며 웃었다.
오타니 유니폼의 기운이 또 승리로 이어진 것도 반가웠다. 야구인들은 크고 작은 징크스와 루틴이 많은데 원태인에겐 오타니 유니폼과 스파이크가 승리 공식으로 자리잡았다. 스파이크도 오타니에게 용품을 협찬하는 회사의 시그니처 컬렉션이다.
그는 “전반기 막판에 너무 안 좋았고, 후반기 첫 경기부터 헤드샷 퇴장을 당했다. 뭐라도 해보기 위해 오타니 선수 유니폼을 해외 배송으로 주문했는데 (헤드샷 퇴장 다음 경기에) 때마침 배송이 왔다. 그때부터 선발 날마다 오타니 선수 유니폼을 입고 출근하는데 8승1패를 했다. 대단한 선수의 좋은 기운을 받은 것 같다”며 웃은 뒤 “유니폼뿐만 아니라 스파이크도 오타니 선수가 쓰는 것과 같다. 미신 아닌 미신을 믿고자 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있다. 유니폼은 홈에서만 입고 출근하는데 서울에서 (3~4차전이) 끝나고 오면 빨래 해서 다시 입겠다”고 말했다.
1~2차전에서 모두 LG를 압도하며 2연승을 거둔 삼성은 한국시리즈 진출에 1승만 남겨놓았다. 오타니가 속한 다저스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뉴욕 메츠와 1승1패로 맞서며 월드시리즈 진출을 위한 마지막 관문에 왔다. 원태인의 삼성과 오타니의 다저스 모두 가을야구에서 끝까지 웃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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