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실력만큼 인성이 좋기로 정평이 난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에게 이런 면도 있다. 소리를 치며 화를 낼 정도로 분노했다. 그만큼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다.
오타니는 지난 10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NLDS·5전3선승제) 4차전에 1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 3타수 1안타 1타점 2볼넷으로 3출루 경기를 펼치며 다저스의 8-0 완승에 힘을 보탰다.
1차전 승리 후 2~3차전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패해 1승2패 벼랑 끝이었던 다저스는 이날 승리로 기사회생했다. 2승2패 시리즈 전적 동률을 만들며 오는 12일 다저스타디움 홈에서 NLDS 최종 5차전을 치르게 됐다.
오타니는 1회 첫 타석에서 1루 땅볼로 아웃됐지만 2회 2사 1,2루 찬스에서 적시타를 터뜨렸다. 샌디에이고 선발 딜런 시즈의 초구 바깥쪽 높게 들어온 스위퍼를 잡아당겨 1루수 옆을 빠지는 우전 안타로 연결했다. 2-0으로 스코어를 벌린 한 방. 1루로 뛰면서 오타니는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했다.
4회 1사 후 볼넷으로 걸어나간 오타니는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줬다. 베츠의 중견수 뜬공 때 1루에서 2루로 태그업하며 진루에 성공한 것이다. 샌디에이고 중견수 잭슨 메릴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듯 당황하며 2루로 던졌지만 오타니의 발이 빨랐다. 2루에 진루한 오타니는 3루 다저스 덕아웃을 바라보며 팔을 들어올렸다.
상대의 허를 찌른 과감한 주루로 분위기를 띄운 오타니. 그러나 다음 타자 테오스카 에르난데스의 안타 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좌익선상 빠지는 타구였는데 샌디에이고 3루수 매니 마차도의 글러브를 맞고 튄 공이 3루심 마크 리퍼거 심판이 페어를 선언하면서 든 왼팔에 맞고 떨어진 것이다.
이에 디노 에벨 다저스 3루 베이스코치가 두 팔을 번쩍 들고 오타니의 홈 질주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오타니는 멈추지 않고 3루를 지나 홈으로 달렸다. 속도를 높인 상태에서 갑자기 멈추기도 쉽지 않았다. 급정거를 하다 다리 쪽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오타니는 홈으로 질주했지만 완벽하게 아웃을 당했다. 마차도는 심판 발 밑으로 떨어진 공을 주워 빠르고 정확하게 홈으로 던져 오타니의 태그 아웃을 이끌어냈다. 그대로 이닝 종료. 오타니의 의욕은 넘쳤지만 타구의 운이 따르지 않았다. 5-0으로 앞서고 있었지만 추가점을 필요로 했던 다저스로선 맥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덕아웃에서 영상을 다시 본 오타니는 분노했다. 소리를 크게 치며 욕설을 하는 듯한 모습이 일본 취재 영상에 잡혔다. 주변에 있던 동료 선수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평소의 오타니답지 않은 모습이라 화제가 됐다. 다저스 전문 매체 ‘다저스 네이션’은 ‘오타니가 화를 내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없다. 심판에게 타구가 맞은 것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고 전했다.
사실 심판 잘못이라고 볼 순 없는 장면이었다. 3루심 리퍼거는 타구를 본 뒤 뒷걸음질 치면서 왼팔을 들어 페어 사인을 보냈다. 공을 피하려고 했는데 마차도의 글러브 끝에 맞고 굴절된 타구가 하필이면 심판의 왼팔을 맞은 것이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이었지만 오타니나 다저스 입장에선 너무나도 운이 없었다.
그만큼 오타니의 승리에 대한 집념이 대단했다. 평소 온순한 성격의 순둥이로 유명하지만 시즌 막판부터 감정 표현이 커지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 첫 가을야구를 맞아 텐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1차전에선 2회 동점 스리런 홈런을 치고 난 뒤 평소에 거의 하지 않던 화려한 배트 플립까지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