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가방을 흔들며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를 사로잡았던 '철가방 요리사' 임태훈 셰프. 힘들었던 시절을 극복하고 요리사가 된 데 이어 중식만 50년 경력의 대가 여경래 셰프를 이기고 남다른 서사를 장식한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최근 서울시 중구 서촌에 위치한 중식당 도량에서 만난 임태훈 셰프는 오후 브레이크타임까지 웨이팅을 문의하는 방문객들에게 '만석' 사실을 알리며 다음을 약속하고 있었다. 모두 뜨거운 반응을 얻은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약칭 흑백요리사)' 덕분이었다.
'흑백요리사'는 맛 하나는 최고라고 평가받는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셰프 백수저들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치열하게 맞붙는 100인의 요리 계급 전쟁을 그린 서바이벌 예능이다. 이 가운데 임태훈 셰프는 흑수저 계급의 '철가방 요리사'로 출연해 활약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셰프, 그 중에서도 '철가방 요리사' 임태훈 셰프는 최종 15인까지 들며 저력을 입증했다. 상상을 구현한 듯한 거대한 팔보완자부터 백종원, 안성재 두 심사위원을 사로잡더니 1대 1대결에서는 맛 하나로 승부한 블라인드 심사에서 중식 대 선배 여경래 셰프까지 이겼다.
정작 그는 "그게 어떻게 이긴 거냐"라고 멋쩍게 웃으며 "절대 이긴 게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여경래 사부님은 모든 중식 하는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고 우상"이라고 힘주어 말하며 "저는 특히나 그랬다. 제가 밑바닥부터 시작해 배움이 짧다. 서른살에 창업해 10년이 지났는데 그 과거사에 어깨너머로 배운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너무 부족했고, 여경래 사부님, 여경옥 사부님의 책으로 배운 게 많았다. 지금도 그 책을 보고 있다. 그런 존경하는 분과 만날 순간이 오니 어떻게는 뵙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방송이라 결과가 나온 것일 뿐 그게 어떻게 제가 이긴 것이라 할 수 있나. 요리에 이기고 지는 게 없다. 그 순간 승부는 없다. 단 한 번도 그걸 '이겼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취향의 차이라는 말도 죄송스럽다"라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겸손한 그의 소회와 달리 언더독의 승리는 단숨에 시청자를 매혹시켰다. 이에 '철가방 요리사'를 우승후보로 미는 반응도 상당했던 바. 공식포스터에 그가 전면에 등장했다는 이유로 우승자라고 하는가 하면, 일본판에서 그의 목소리를 유명 성우가 더빙했다는 이유로 우승자라고 말하는 팬심 어린 추측들이 쇄도했다. "사실 예약이 바빠 방송도 제대로 못봤는데 연락 주시는 분들 덕분에 알게 됐다"라고 고백한 임태훈 셰프는 "포스터 얘기는 한참 뒤에 나중에야 들었고 일본어 성우 더빙 이야기는 재미있다고 생각도 했다"라며 웃었다.
구성 면에서 비판을 자아내는 방출 미션으로 인해 탈락하긴 했으나, '철가방 요리사'라는 캐릭터 플레이 안에서는 의미 있었다. 팀들을 위해 방출을 자처하며 끝까지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준 덕분이다. 이와 관련 임태훈 셰프는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 있었다. 그렇기에 다들 받아들이고 현장에서 임했고, 후회는 없다"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어 "원래 레스토랑 미션에서는 장을 먼저 보기로 해서 10시 전에 장을 보고 다같이 재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방출 미션이 떴다. 사실 그 전부터 스튜디오에 부스 하나 남는 게 보여서 '설마 팀 하나 더? 방출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누가 봐도 한 팀이 더 요리하는 구조였다"라고 털어놨다.
또한 "그런데 딱 드는 생각이 저도 의견을 냈지만 정지선 셰프가 응용력이 엄청 뛰어난 분이라 서포트를 하는 역할이라 생각했고 팀에 도움을 주려면 내가 나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선 누나가 '가만 있어'라고 해주더라. 트리플스타 그 친구도 '형 가만히 계세요'라고 해주더라. 고마웠다. 대신 제가 나간다고 하면서 남은 재료 좋게 쓰고, '나가서 이기고 올라갈게!'라고 자신있게 말했다"라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락할 수 밖에 없던 배경에 대해 그는 "막상 새 팀을 꾸리니까 재료수급이 이미 너무 늦어버렸더라. 원래 도전하고 싶던 건 양고기였는데 없었고, 동파육이 처음엔 하기 싫은 메뉴였지만 실수나 기복 없이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메뉴라 후회 없이 선택했다"라고 고백했다.
처절한 요리 대결 끝에 고민 없이 떠나기까지, '흑백요리사'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임태훈 셰프는 "처음엔 백수저 소속의 박준우 셰프가 권유를 해왔다. 친구 같은 사이다. 친하게 지낸지 12년이나 됐다. 네 번 정도 권유가 와서 안 나간다고 4번을 말했다"라며 웃었다. 그는 이어 "그런데도 제작진 분들께 연락이 왔다. 한 번만 만나자고. 그 뒤에 출연을 하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출연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처음이자 마지막 방송이라고 생각하고 임했다. 사실 제가 과거엔 '마스터 셰프 코리아'에 지원한 적이 있는데 100인 선정에서 떨어졌다. 그 이후로 방송은 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제안이 왔으니 '한 번 해보자, 마지막으로'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막상 가서는 룰도 몰랐다. 흑수저 20인에만 들어가도 '나같은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했는데 좋은 평가를 받아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이에 힘입어 그의 영토나 다름 없는 도량의 주방은 쉴 틈 없이 분주했다. "새벽 6시부터 줄서는 분들이 있다"라며 난감해 한 그는 "부산, 대전에서 오셨다가 그냥 가시는 분들도 계셔서 너무 죄송해서 시스템을 마련해보려 노력 중이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손님 증원의 계획은 전혀 없었다. 본인 뿐만 아니라 직원 나아가 음식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나가아 임태훈 셰프는 "저도 그냥 똑같은 사람"이라고 담백하게 말하며 "일적인 부분만 다른 거고 실제로는 완전 장난기 많고, 주방에서는 날카롭게 하는 것도 많다. 사람에 대한 존중은 지키려 한다. 첫 이미지로 판단해주시는 분들이 많더라. 방송에서 모습이 제 모습이 아닌 건 아니다. 그렇지만 제 전부는 아니라 부담감도 없진 않다"라고 털어놨다.
끝으로 그는 "미공개 장면 중에 마지막 4라운드 레스토랑 방출 미션에서 탈락하고 제작진과 인터뷰를 했다. 그러면서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께 감사하다. 사랑합니다'라고 했는데 편집됐다. 안 나오더라. 지금 할머니가 큰 고모님이랑 살고 계신다. 아흔이신데 치매 초기셔서 약물 치료를 받고 계시다. 그런데도 바로 옆에서 얘기한 것도 까먹으실 때가 많다. 아직은 제 이름을 기억하시는데 조금이라도 알아보실 수 있을 때 '흑백요리사'를 나간 게 많이 뭉클하다. 그래서 더 그 한 마디가 편집된 게 너무 아쉬웠다"라며 눈물을 글썽거려 울림을 남겼다.
/ monamie@osen.co.kr
[사진]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