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에 이어) "한국에서 중식하는 화교들은 모두 친한이라는 것만 기억해주세요". 화통하고 인자한 웃음 뒤에 화교로 버텨온 애환이 있었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여경래 셰프가 방송을 돌아보며 국내 소수자인 화교들의 인식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여경래 셰프는 최근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에 위치한 홍보각에서 OSEN과 만나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약칭 '흑백요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흑백요리사'는 맛 하나는 최고라고 평가받는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셰프 백수저들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치열하게 맞붙는 100인의 요리 계급 전쟁을 그린 서바이벌 예능이다. 지난달 17일 첫 공개된 뒤 뜨거운 호평 속에 지난 8일 12회(최종회)로 막을 내렸다.
이 가운데 여경래 셰프는 백수저 중 중식을 대표하는 셰프로 출연했다. 요리 인생 50년, 세계중식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모두가 인정하는 중식 대표 셰프인 그가 '흑백요리사'에 심사위원도 아닌 참가자로 출연한다는 점이 화제를 모았던 바. 심지어 흑수저 '철가방 요리사'와의 1대 1 대결 끝에 탈락한 반전은 놀라움을 선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경래 셰프는 깔끔하게 승복하고 후배를 인정해주는 모습으로 감동을 자아냈다.
"방송 이후 예약이 배가 됐다"라고 혀를 내두른 여경래 셰프는 "홍보각은 호텔 레스토랑이라 규모가 크다 보니 더 바빠졌다. 그렇지만 즐거운 비명이다. 한창 바쁜 때가 끝나면 살짝 인사하면서 셀카도 찍는데 빨리 찍어드리도 주방을 지켜야 해서 사진 찍는 실력이 늘었다"라며 웃었다.
긴장감 넘치는 서바이벌의 순간에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은 여경래 셰프. 실제로 만난 그는 계속해서 소리내 웃으며 유쾌한 대가의 여유를 보여줬다. 정작 그는 "제가 65세다. 저 젊었을 때는 안경 쓰는 것도 안 좋게 보는 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미간에 주름이 깊었는데 20대 중반 됐을 때 거울을 보니 '이런 얼굴로 세상을 사는 구나,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얼굴인데'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 때부터 일부러 소리내 웃으면서 다녔다. 한 3년 정도를 그렇게 다니니 웃는 얼굴이 습관이고 버릇이 됐다. 제 딴에는 스스로 극복하려는 시도였다"라고 털어놨다.
강연도 역시 그에게는 극복을 위한 도전이었다고. 여경래 셰프는 "사실 중학교까지만 졸업한 제가 대학교에서 강연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그렇게 남을 가르치려면 나도 공부를 해야 하더라. 그렇게 강연자로 선 제 모습이 뿌듯했다. 어제도 부산에서 선발된 학생들을 만나 요리사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왔는데 저도 에너지를 얻었다. 이심전심으로 서로의 에너지가 전해졌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흑백요리사' 출연에 대해서도 여경래 셰프는 "방송 한번에 뭔가를 얻으려고 하진 않았다. 잠재된 에너지를 일깨워보고 싶었는데 놀랍게도 탈락했는데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만끽하고 있다"라며 웃었다. 특히 그는 제자인 '중식 여신' 박은영 셰프와 동반 출연에 대해 "제가 이금기 고문으로 있으며 요리대회를 통해 만난 친구다. 각 대학 우승자들 사이 왕중왕전을 가리게 됐는데 그 우승자가 박은영 셰프다. 우승 만으로는 눈에 띄진 않았다. 그런데 제 동생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더라. 가만히 지켜보니 퇴근하고도 다른 사람 도와주고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게 보였다. 2년 정도 동생 가게에서 일하고 그만두게 됐다고 했을 때 '내 밑으로 와라'라고 데려왔다. 그 뒤에도 계속해서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졌다. 이연복 셰프와 '중화대반점'에서 대결할 때도 함께 했는데 그 때 이연복 셰프 제자로 정지선 셰프가 나왔었다. 그런데 제자전에서는 박은영 셰프가 이겼다"라며 웃었다.
제자와 함께 출연했던 '흑백요리사'에 두고두고 호평이 쏟아지는 상황. 여경래 셰프는 "제가 세계중식협회 부회장이라 아무래도 해외에 한국 셰프들을 많이 데리고 다닌다. 'K푸드'의 위상이 어느 때보다 높고 중식을 해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다들 환영을 해주는 분위기"라며 '흑백요리사'의 흥행에도 함께 기뻐했다.
무엇보다 여경래 셰프는 "저는 기본이 '한중 합작'인 사람이다. 어머니가 한국 분이고, 국적은 대만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래서 양국 관계가 좋을 때가 제일 좋다. 그런데 '흑백요리사' 공개 전까지만 해도 유튜브나 SNS에 서로 양국 사이 잘못된 '가짜뉴스'들과 그로 인한 편견들이 너무 많은 걸 보고 마음이 안 좋았다. 저는 한국어와 중국어를 다 할 줄 아니 정확한 내용을 아는데, 유튜브나 숏츠 같은 짧은 영상을 보면 전혀 다른 내용을 악의적으로 번역해 퍼트리는 영상들이 한국어나 중국어나 서로 존재하더라. 명백한 '가짜뉴스'다. 이런 상황엔 서로가 배울 게 전혀 없지 않겠나. 이건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그는 "그래서 '흑백요리사'에서도 후배들을 위해 나름의 의미를 갖고 출연했지만 탈락했는데도 저를 응원해주시는 반응들을 보고 놀라웠다. 사실 반발 감정이 너무 커져서 한국에서 중식을 하는 화교로서는 욕만 먹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인정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저야 업무상 대만이나 홍콩 같은 해외를 나갈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러지 못했지만 아내와 자식들은 다들 귀화 시험에 도전했다가 떨어졌다. 두 번이나 봤는데도 그랬다. '1948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 우승자가 누구냐'는 문제들이 나온다고 하더라. 서윤복 선수였다는 걸 지금은 안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 손자까지 4대째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정착한 화교로 한국인이 되지 못했다는 건 아쉽더라"라며 씁쓸함을 표했다.
더불어 여경래 셰프는 "한국의 중식, 세계의 한식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다. 세계중식협회에서 해외에서 미팅을 할 때마다 보면 '현지화'가 가장 큰 화두다. 그런데 한식을 현지화한 방식으로 풀어냈을 때는 오히려 여전히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짜장면도 저는 한식이라는 생각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루에 한국에서 짜장면이 700만 그릇이 팔리는데도 그렇다. 한식도 'K푸드'에 대한 애정이 높아졌을 때 해외에서 현지식에 맞춰 조금 더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지 않겠나. 융통성 있는 생각, 그만큼 요리사들의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 monamie@osen.co.kr
[사진] 여경래 셰프,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