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그 날은 특별한 날. 목욕재계가 필요한 날이었다. 룰루랄라 샴푸를 듬뿍 머리에 비비고 헹구려는 순간 물이 끊겼다. 온수 공사한다니 그럴 수 있다. 아쉬운 대로 생수는 있으니까.
꽃단장도 필요한 날. 눈빛 순결한 와이셔츠를 곱게 다려내는 중이었다. 전화가 걸려왔고 받고 돌아서니 어느 새 쓰러진 다리미가 와이셔츠를 구멍 내고 있었다. 그래도 뭐 와이셔츠는 또 있으니까.
진짜 꽃도 필요한 날. 센스쟁이 꽃가게 사장님이 차 트렁크를 화사한 꽃밭으로 꾸며주셨다. ‘Will you merry me?’ 영문 필기체는 어찌 저리 귀엽고 또렷한 지. 그 차에 그녀를 태웠다. 그런데 아뿔사! 신호대기 중 돌연 닥쳐온 충격은 뭐람? 뒷 차의 추돌로 뒷 범퍼가 박살 난 차는 견인차에 끌려갔다. 이건 좀 아프지만 그래도 뭐 이벤트는 남아있으니까.
통째로 빌린 레스토랑이다. 물색 모르는 그녀는 ‘사람이 이렇게 없다고?’ 셰프의 솜씨를 의심했다. 미리 말 맞춘 사장님은 그녀의 의심을 너그럽게 넘기며 전채 요리를 설명했다. 그때 울리는 사장님의 전화. 전화를 받고 감격해하는 사장님. 아이를 낳았단다. 어쩔 줄 모른다. 당연히 가셔야지. 보내드릴 수밖에 없다. 사장님이 ‘프로포즈 케이크는 냉장고에’라 귀띔해주신다. 그러니까. 케이크가 남아 있으니까.
떨린다. 최후의, 가장 의미있는 이벤트다. 자태부터 영롱한 하얀 케이크 위에 장식된 글귀를 그녀가 읽으면 품 속에 간직한 팔찌를 꺼내 그 글귀를 내 입으로 읊으면 된다. ‘Will you merry me?’ 그러면 그녀는.. 헛! 딴 생각이 보폭을 흐트렸다. 별안간 꼬인 스텝, 하늘을 나는 케이크. 내 무릎이 바닥을 찧는 순간, 케이크는 비상을 마치고 바닥에 처박혔다. 오 마이 갓!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그녀는 하루 종일 쫄쫄 굶은 우리의 위장을 위해 요리를 하겠다고 나선다. 신메뉴 브이로그 동영상도 찍을겸 해서다. 마침 그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린다. 문자를 읽는 그녀의 반응이 심상찮다. 내용을 읽어보니 그녀의 동영상을 보고 만든 건강식이 항암치료 중인 어머니 입에 맞았다는 감사의 문자다.
위암수술과 항암을 경험한 그녀는 감정이 이입된 듯 눈물을 글썽인다. 그런 그녀가 안쓰럽고 짠한 기분에 입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이상하다. 니가 이렇게 예쁘게 웃는데 나는 자꾸 눈물 날 것 같애. 앞으로 니가 밥을 앉힐 때, 감자를 썰 때, 나물을 무칠 때도 가끔 마음이 아플 것 같애. 그때 너 아파서 아무 것도 못먹었을 때 내가 곁에 있어 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해서, 사무쳐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자위에 눈물이 맺힌다. ‘어라? 이런 반응이라면?’ 그래 벼르고 벼르던 D데이다. 예서 말 순 없다. 아직 내겐 품 속의 팔찌가 있다.
나는 그녀의 눈가를 훔쳐주면서 말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 있을 너의 모든 날들에는 내가 함께 하면 안될까?” 여전히 눈물 맺힌 눈으로 그녀가 물어온다. “응?”
“원래 계획이 이게 아녔는데, 꽃은 카센터에 가 있고 음식은 날아갔고 케이크마저 엉망이 됐지만 그래도 다행히 이건 남아 가지고..”라며 팔찌를 꺼내 들었다. “석류야, 나랑 결혼해 주라.”
와장창. “나 결혼 못해. 아니 나 결혼 안해. 미안.” 이럴 수가! 눈물 매단 눈이 호선을 그린 채 팔찌를 차보는 그녀를 상상했다. 그리곤 감격스럽게 안겨 오는 그녀도 그려 보았다. 그리고 감정에 북받친 채 키스하는 우리를 기대한 게 과대망상이라고? 프로포즈의 전형적인 클리세 아닌가? 머리가 하얘진다. 이 망할 엄마친구딸은 도대체 비위를 맞출 수가 없다.
29일 방송된 tvN 토일드라마 ‘엄마친구아들’ 최승효(정해인 분)의 프로포즈데이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최승효의 프로포즈는 클리세를 따르지 않았지만 배석류(정소민 분)에게 거절당한 최승효는 차인 남자 클리세를 따라간다. 도대체 내 프로포즈 어디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이유를 곱씹어도 보고 조언에 나선 강단호(윤지온 분)가 여자는 허기지면 예민해 진다며 “배가 고파서가 아녔을까?”추론했을 땐 전혀 동의하지 못하면서도 차라리 그런 걸로 하고 싶어한다.
실연남답게 혼자서 술먹다 뻗어버리고 부축하러 온 배석류에게 “너 왜 나 거절했냐? 어떻게 나랑 결혼을 안한다고 말할 수 있어?”라며 꼬치꼬치 캐묻기도 한다. “너가 없으면 내 인생은 아무 맛도 안나는데.. 너가 내 소금이고 설탕이고 참기름인데..”라며 매달려도 본다.
승효의 주정이 끝나고 난 뒤에야 배석류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길지 않을 수도 있어. 나 지금 괜찮아 보여도 언제든 안괜찮아질 수 있다고. 난 언제 다시 아파도 이상하지 않은 몸이니까.” 이 맹랑한 엄마친구딸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최승효 걱정을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삶은 유한하고 죽음은 필연적임을, 모두가 같은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배석류는 간과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품에 안고 말해 주었다. “나 너랑 살고 싶어. 백 년, 십 년, 아니 단 하루를 살아도 나는 너여야만 해.” 그제서야 “나도 그러고 싶어!” 마침내 듣고 싶은 답을 들었다. 그렇게 부둥켜안고 어화둥둥하는 사이 배석류가 밀어낸다. 흠칫 돌아보니 그런 둘을 지켜보는 네쌍의 눈동자. 싸한 적막이 골목에 내려 앉는다.
건축 현장에서 낙석 사고를 당한 최승효는 그 순간 주마등을 경험했다. 그 주마등을 통해 확인한 한 가지 사실. 그 모든 장면에 배석류가 있었다는 것.
미국에서 위암 수술 받고 항암치료 받던 배석류는 어떤가. 송현준(한준우 분)이 옆을 지켜줬음에도 외로웠으며 오직 최승효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했었다.
평생을 함께 한 두 사람은 언제나 서로에게 그리움이었다. 보고 있어도 왈칵 솟아나고, 문득 문득 가슴에 서걱하게 와 닿는 그리움. 그래서 언제나 사무치는 두 사람이지만 해피엔딩은 아직이다.
‘근친’ 이미지도 개선이 시급한 판에 양가 모친 나미숙(박지영 분)-서혜숙(장영남 분) 숙자매의 수십년 우정이 파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절교를 하려는 판인데 사돈을 맺으라니..
2회를 남겨두고 있지만 생활형 드라마 속 최승효-배석류의 연애는 아직 넘을 고비가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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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