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가 처음으로 지구 우승을 확정한 날, 전 소속팀 LA 에인절스는 구단 역대 최다패 불명예 기록을 썼다. 오타니를 놓친 대가가 이렇게 크다.
다저스가 지난 27일(이하 한국시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홈경기를 7-2로 승리하며 잔여 시즌 3경기를 남겨놓고 내셔널리그(NL) 서부지구 우승을 확정했다. 최근 12년 사이에 11번째 지구 우승을 이룬 다저스에는 익숙한 일이지만 처음으로 경험한 오타니는 조금 낯설어 보였다. 우승 기념 티셔츠를 입고 동료들과 클럽하우스에서 샴페인 파티를 즐기며 환하게 웃었다.
매년 이맘때 오타니는 늘 우울하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에인절스의 전력이 워낙 약했기 때문이었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에인절스는 6년간 지구 순위 4-4-4-4-3-4위로 한 시즌도 5할 승률을 넘지 못했다. 오타니가 투타겸업으로 분전했지만 투타 곳곳에서 구멍이 숭숭 뚫렸다. 큰돈 들여 영입한 알버트 푸홀스, 앤서니 렌던은 FA 먹튀로 전락하는 등 구단 운영이 극악이었다.
지난겨울에는 FA 오타니를 잡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1년 2032만5000달러 퀄리파잉 오퍼만 형식적으로 한 것이 전부. 다저스로부터 10년 7억 달러를 제시받은 오타니 측에서 사인을 하기 전 에인절스에 같은 조건을 맞춰줄 수 있는지 역제안했지만 무시당했다. 지난해 12월16일 ‘LA타임스’에 따르면 오타니의 에이전트 네즈 발레로는 “오타니는 에인절스에서 뛰는 것을 정말로 좋아했다. 그곳의 모든 것과 사람들을 사랑했다. 우리는 그들과 협상 기회를 주고 싶었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낸 바 있다.
오타니도 지난 4일 에인절스타디움을 다저스 선수로 방문한 뒤 지난겨울 에인절스를 떠난 과정에 대해 “실제로 제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에’라는 말을 할 수 없다”며 에둘러 섭섭함을 표하기도 했다.
오타니는 올해 팔꿈치 수술에 따른 재활로 투구를 하지 않고 있지만 전 세계 야구 역사상 최초 50-50 대기록으로 역사적 시즌을 보내고 있다. 156경기 타율 3할5리(622타수 190안타) 53홈런 126타점 131득점 56도루 출루율 .387 장타율 .643 OPS 1.030으로 활약하며 풀타임 지명타자 최초 MVP 수상이 확실시된다. 10년 7억 달러 몸값이 전혀 아깝지 않다.
반면 오타니를 놓친 에인절스는 그 대가를 제대로 치르고 있다. 오타니가 첫 우승을 맛본 27일, 에인절스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0-7 완패를 당했다. 63승96패(승률 .396)로 아메리칸리그(AL) 서부지구 5위 꼴찌. 1968년, 1980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시절 95패를 넘어 구단 역대 최다패 불명예를 썼다.
가뜩이나 약한 전력인데 오타니가 빠진 뒤 대책없이 무너졌다. 오프시즌에 별다른 전력 보강이 없었고, 중심타자 마이크 트라웃이 29경기 만에 무릎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며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도 3번이나 부상자 명단에 오른 렌던은 57경기 238타석 무홈런으로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팀 평균자책점 26위(4.53), 선발 평균자책점 28위(4.98)로 마운드는 늘 그렇듯 답이 없었다.
주전 포수로 첫 풀타임 시즌을 치르며 20홈런을 기록한 포수 로건 오하피가 몇 안 되는 수확 중 하나. 하지만 오하피도 벌써 거듭된 패배에 지친 모습이다. ‘MLB.com’에 따르면 27일 경기 후 “정말 끔찍하다. 팬들은 주말에 야구장에 와서 우리가 이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우리도 누구보다 이기고 싶지만 1년 내내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지면서 그저 답답할 뿐이다. 누구도 지금 상황이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트라웃도 지난 24일 ‘디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오프시즌에 몇 명의 선수를 영입해야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아르테 모레노) 구단주에게 달려있다. 우리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우리 팬들도 플레이오프 야구를 원한다”고 말했다. 에인절스의 마지막 포스트시즌은 2014년으로 벌써 10년 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