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비밀이에요, 왜냐면…”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김경문 감독은 지난 27일 대전 KIA전을 앞두고 28일 대전 SSG전 선발투수에 대한 질문을 받곤 말을 아꼈다. 어깨 피로 누적으로 빠진 문동주에 이어 류현진도 팔꿈치에 불편감을 느껴 시즌을 끝마친 가운데 대체 선발투수를 써야 하는 상황. 누가 나설지 점치기 애매했다.
가을야구가 좌절된 한화이지만 이날 선발투수가 더 관심을 모은 이유가 있었다. 상대팀 SSG가 KT와 치열한 5위 싸움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27일 경기 전까지 SSG와 KT는 나란히 70승70패2무, 5할 승률로 공동 5위였다. 남은 2경기에서 두 팀이 동률이 되면 KBO리그 역대 최초로 5위 타이브레이커가 열린다.
남은 경기에 사활을 걸어야 하다 보니 상대팀들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27~28일 수원 KT전, 30일 문학 SSG전으로 5위 싸움 중인 두 팀을 연이어 만나게 된 10위 키움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모양새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지난 26일 외국인 투수 엔마누엘 데 헤이수스가 30일 SSG전 선발로 나설 것이라고 밝히며 “숭용이형이, 이숭용 감독님이 내 전화번호를 지우면 어떻게 하지?”라는 농담 섞인 걱정을 했다. 특급 외국인 투수를 내보내게 됐으니 SSG 입장에선 야속하게 느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홍원기 감독과 이숭용 감독은 현대 시절 한솥밥을 먹은 인연이 있다.
홍 감독은 “신경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되는 게 첫 번째다. 순서에 맞게 차례대로 나가는 게 우리가 해야 될 도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헤이수스는 27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돼 SSG전 등판이 불발됐다. 홍 감독은 “고척돔 마지막 경기(24일 고척 한화전)도 내전근 부상으로 쥐가 나고 통증이 조금 있었다. 어제(26일) 훈련 중 불편함을 호소해 최종적으로 등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28일 SSG를 상대하게 된 한화도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됐지만 5위 싸움과 맞물려 마냥 힘을 빼고 경기를 할 수 없게 됐다. 27일 KIA전을 앞두고 SSG전 선발에 대해 김경문 감독도 “아직 비밀이다. 왜냐하면 상대가 지금 순위 싸움을 하고 있다. 그 팀을 만나는 팀으로서, 감독으로서 오해를 사지 않을 게임을 해야 한다. 선발은 나중에 얘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가을야구가 멀어진 뒤 한화는 젊은 선수들을 다양하게 쓰며 내년 시즌 준비 모드에 들어갔다. 김 감독은 “사실 지금 그동안 경기를 많이 안 뛰었던 선수들이 나가서 더 잘하고 있다. 2군에서 고생하다 올라온 선수들이 집중해서 잘해주고 있다. 내일(28일)도 선수들 컨디션을 보고 라인업을 정할 것이다”며 좋은 흐름을 타는 젊은 선수들 위주로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김 감독이 비밀에 부친 28일 SSG전 선발투수는 경기 후 발표됐다. 좌완 김기중이다. 올 시즌 26경기(10선발·56⅓이닝) 5승4패 평균자책점 6.55를 기록 중인 김기중은 SSG 상대로 딱 1경기 나섰다. 지난 6월14일 대전 경기에서 구원으로 등판해 2이닝 3피안타 1사구 2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았다.
올해 한화전 5승10패로 열세인 SSG에선 에이스 김광현이 선발등판한다. 최근 2경기 연속 승리투수가 되며 11이닝 무실점으로 페이스가 좋다.
SSG로선 꼭 잡아야 할 경기가 됐다. KT가 27일 수원 키움전을 연장 12회 승부 끝에 8-7 끝내기로 승리, SSG는 0.5경기 뒤진 6위로 밀려났다. KT가 최종전인 28일 키움전을 승리하면 SSG는 28일 한화전, 30일 키움전을 모두 이겨야 타이브레이커로 포스트시즌 희망을 이어갈 수 있다. 상대 전적도 8승8패 동률인데 다득점에서 KT(92점)가 SSG(87점)에 앞서 수원에서 타이브레이커 게임이 치러진다.
KT가 28일 키움전을 패하면 SSG에도 조금 여유가 생기지만 타이브레이커를 치르지 않기 위해선 다 이겨야 한다. 다른 경우의 수를 생각하지 않고 28일 한화를 이기고 봐야 한다. 키움이 27일 KT를 연장 12회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것처럼 한화도 쉽게 물러서진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