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9번의 꼴찌를 경험한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가 같은 날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됐다. 두 팀 모두 리그를 대표하는 명장들을 모셔왔지만 당장 성적으로 나타나진 않았다.
한화와 롯데는 지난 24일 나란히 포스트시즌 탈락 확정인 ‘트래직 넘버’가 소멸됐다. 한화는 고척 키움전에서 불펜이 무너지며 4-5 역전패를 당했고, 롯데는 수원 KT전에서 타선 침묵 속에 1-5로 패했다.
반경기 차이로 7~8위에 올라있는 롯데(63승72패4무), 한화(64승74패2무 승률 .464)는 각각 5경기, 4경기가 남아있지만 가을야구 탈락이 확정됐다. 7위 자리를 두고 씁쓸한 경쟁을 하게 됐다.
한화는 2019년부터 6년 연속 가을야구 실패를 맛봤다. 2008년부터 최근 17년간 포스트시즌 1번(2018년)으로 지긋지긋한 암흑기가 연장됐다. 롯데도 2018년부터 7년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으로 최근 12년간 가을야구 1번(2017년)으로 고난이 이어지고 있다.
한화는 FA 강타자 안치홍을 영입하고, 메이저리그 투수 류현진이 돌아와 5강 후보로 기대를 모았다. 기대대로 초반 기세가 매서웠다. 개막전 패배 후 7연승을 질주하며 단독 1위로 시즌 초반 깜짝 돌풍을 일으켰다. 개막 10경기 8승2패로 최고 스타트를 끊었다.
그러나 4월 월간 순위 10위(6승17패 승률 .261)로 급추락하며 짧았던 봄이 끝났다. 류현진이 시즌 초반 ABS존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고전했고, 불펜 필승조들이 흔들리며 역전패를 반복했다. 외국인 투수들도 부상 및 부진으로 오락가락했다. 전반기에 맹활약하던 요나단 페라자가 후반기에 부진했고, 전반기에 침묵하던 채은성이 후반기에 살아나는 등 타선의 기복도 심해 종잡을 수 없는 경기력을 거듭했다. 지난해 투타 기둥으로 성장했던 문동주와 노시환도 올해는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결국 5월27일 8위로 떨어진 상황에서 최원호 감독이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났고, 6월2일 김경문 감독이 선임됐다. 두산, NC에서 포스트시즌 10회 진출을 이끈 ‘베테랑 명장’ 김경문 감독이 온 뒤 투수들의 보직이 재정립되고, 야수들이 경쟁 체제 속에 하나둘씩 두각을 드러냈다. 7월말부터 한여름에 무서운 상승세를 타며 지난 4일까지 5위 KT에 1경기 차이로 따라붙었지만 문동주가 어깨 피로 누적으로 선발진에서 이탈한 뒤 추격 동력을 잃었다.
롯데도 한화 못지않게 널뛰기 시즌을 보냈다. 5월까지 10위로 바닥을 쳤지만 6월 월간 순위 1위(14승9패 승률 .609)로 반등했다. 7월에 다시 10위(6승14패 승률 .300)로 추락했다 8월 2위(14승8패 승률 .636)로 치고 올라갔다. 지난 4일까지 5위 KT에 2경기 차이로 따라붙었지만 9월 7위(8승10패 승률 .444)로 결국 뒷심이 떨어졌다.
롯데는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두산을 7년 연속 한국시리즈로 이끌며 3번의 우승으로 왕조 시대를 지휘한 김태형 감독을 선임했다.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시작했지만 올해도 엇박자가 극심했다. 외국인 원투펀치 찰리 반즈와 애런 윌커슨이 제 몫을 했지만 나머지 국내 투수들의 부진이 컸다. 토종 에이스 박세웅이 오락가락했고, 나균안은 경기 전날 음주로 자체 징계를 받으며 최악의 해를 보냈다. 마무리 김원중의 부진 속에 리그 최다 38번의 역전패를 당한 것도 뼈아팠다.
허술한 수비도 고쳐지지 않았다. 실책이 122개로 KIA(141개) 다음 많았다. 인플레이 타구를 아웃 처리한 지표인 DER(Defensive Efficiency Ratio·수비 효율)도 10위(.649)로 바닥이었다. 팀 타율 2위(.283), OPS 4위(.778)로 타선은 리그 평균 이상의 화력을 보여줬지만 투수력과 수비력이 약하다 보니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말았다.
비록 또 다시 가을야구가 좌절됐지만 희망도 발견한 해였다. 한화는 후반기 견갑골 상태가 회복된 문동주가 부진을 딛고 에이스급 활약을 했고, 김서현도 깊은 성장통을 딛고 필승조로 성장했다. 올해 신인으로 경험을 쌓은 좌완 황준서, 올해 고교 최고 강속구 투수 정우주까지 내년에 합류한다. 강력한 젊은 투수들을 중심으로 팀 재건의 기틀을 다졌다.
롯데는 지난해 주전으로 성장한 외야수 윤동희를 비롯해 올해는 1루수 나승엽, 2루수 고승민, 외야수 황성빈 등 젊은 야수들의 잠재력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한 것이 큰 소득이었다. 트레이드로 데려온 3루수 손호영까지 중심타자로 자리잡아 야수진은 어느 팀에도 밀리지 않을 핵심 전력을 구축했다.
한화와 롯데의 진짜 승부는 내년 시즌이다. 3년 계약의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두 명장의 지도력이 가시적인 성과로 나와야 할 시기다.
한화는 김경문 감독이 시즌 중 들어온 뒤 비교적 빠르게 팀을 수습해 경쟁권으로 끌어올렸다. 선수단 파악이 끝난 만큼 마무리·스프링캠프에서 강도 높은 훈련으로 내부 경쟁을 붙여 전력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야수진의 성장이 관건인데 FA 시장에서도 움직임이 주목된다. 김태형 감독도 1년을 풀로 치르면서 크고 작은 일로 롯데 선수단을 깊숙하게 들여다봤다. 야수진 토대를 잘 다져놓은 만큼 약점인 투수력을 끌어올리는 게 과제. FA 시장에 나갈 불펜 필승조 김원중, 구승민과 협상을 어떻게 풀어갈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