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는 송민섭이니까.”
프로야구 KT 위즈 이강철 감독이 100일이 넘도록 2군에 있던 송민섭(33)을 1군 엔트리에 등록하면서 취재진에 한 말이다. 그리고 9월 17일 고척에서 그를 콜업한 이유가 확실히 입증됐다.
송민섭은 지난 1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의 시즌 14번째 맞대결에 교체 출전해 미친 호수비로 팀의 4-2 승리를 이끌었다.
송민섭은 4-2로 근소하게 앞선 9회말 좌익수 김민혁의 대수비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송민섭이 우익수를 담당했고, 우익수였던 멜 로하스 주니어가 좌익수로 이동했다.
KT 마무리 박영현은 선두타자 장재영과 김병휘를 연달아 삼진으로 잡고 승리를 눈앞에 뒀지만, 이주형을 투수 송구 실책, 송성문을 초구 우전안타로 연달아 내보내며 2사 1, 2루 위기에 몰렸다. 장타 한방이면 동점이 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다.
하필이면 타석에 시즌 종료 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김혜성이 등장했다. 박영현은 체인지업으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지만, 2구째 낮은 체인지업에 우측 외야로 향하는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허용했다. 2사였기에 타구가 빠질 경우 2루주자 이주형은 물론 1루주자 김병휘까지 충분히 홈을 밟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타자주자 김혜성마저 3루까지 도달하게 되면 4-4 동점에서 2사 3루 끝내기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던 KT였다.
그러나 KT에는 ‘슈퍼 백업’ 송민섭이 있었다. 타구를 향해 전력질주한 뒤 다이빙과 함께 왼팔을 높이 뻗었고, 타구가 글러브로 쏙 들어가며 경기가 그대로 종료됐다. 송민섭이 메이저리그에서나 볼 수 있는 ‘슈퍼캐치’로 경기를 끝낸 순간이었다.
송민섭은 그라운드에서 무릎을 꿇은 상태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며 마지막 아웃카운트의 기쁨을 만끽했다. 더그아웃에서 이를 지켜본 이강철 감독은 ‘역시 송민섭이다’라는 표정과 함께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KT가 4-2 극적인 승리를 확정한 순간이었다.
송민섭은 선린인터넷고-단국대를 나와 2014년 육성선수로 KT 유니폼을 입은 마법사군단의 창단멤버다. 뛰어난 실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특유의 근성과 악바리 기질을 앞세워 1년 만에 정식선수가 됐고, 매 순간을 성실하게 임하며 KT 외야의 백업 1순위로 자리매김했다. 2013년 트라이아웃을 통해 KT에 입단한 22명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선수가 바로 송민섭이다.
송민섭의 2024시즌 출발은 순탄치 못했다. 구단과 의견 차이를 보이며 재계약 대상자 가운데 유일하게 연봉 협상이 결렬됐고, 스프링캠프 참가 없이 개인 운동으로 2024시즌을 준비했다. 설상가상으로 1월 말 좌측 발목 수술을 받아 재활의 시간까지 가져야했다.
송민섭은 3월 2일 KT의 연봉 동결 제안에 동의하며 천신만고 끝 6500만 원에 2024시즌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3월 30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됐지만, 4월 8일 2군행을 통보받았고, 7월 30일까지 익산에서 무려 114일의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송민섭은 본격적인 순위싸움이 시작된 7월 31일 다시 이강철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이 감독은 당시 “이제는 안정적으로 가야 한다. 실험할 때는 지났다. 수비는 송민섭이 잘한다”라며 대수비 송민섭이 ‘미친 존재감’을 발휘해주길 기대했고, 9월 17일 선수가 사령탑의 기대에 200% 부응했다.
5위 KT는 전날 귀중한 승리를 추가하며 3연승에 성공한 6위 SSG 랜더스와의 승차를 2경기로 유지했다. 동시에 2연패에 빠진 3위 LG 트윈스를 2경기 차이로 추격하며 LG, 두산과 함께 막바지 3위 싸움에 참전했다. 송민섭의 슈퍼캐치가 이 모든 걸 뒷받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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