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는 어울리지 않게 불명예 기록도 하나 남겼다. 역대 한 시즌 최다 137개의 실책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2022년 한화가 갖고 있던 최다 실책 134개를 넘어섰다. 아직 시즌이 7경기 더 남아있으니 실책이 몇 개 더 추가될 수 있다. 최다 실책 2위 롯데(117개)보다 20개나 더 많을 정도로 실책이 잦았다.
10개 구단 체제로 경기수가 늘어난 점을 감안해도 KIA의 실책 숫자는 무척 많은 것이다. 경기당 평균 0.978개로 1980년대 프로 초창기를 제외하고 1990년 이후로는 1991년 빙그레(0.984개) 다음으로 많은 기록이다.
3루수 김도영이 리그 최다 28개의 실책으로 이 부문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게 크다. 37홈런 39도루로 KBO리그 국내 선수 최초 40-40을 바라보며 MVP 후보로 군림하고 있지만 시즌 내내 수비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박찬호도 유격수 중 두 번째 많은 실책을 저질렀다.
흔히 야구는 수비가 강해야 강팀이라고 한다. 강팀의 기본은 수비이고, 실책이 많은 팀은 허술하게 보인다. KIA는 그런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14-1로 앞서다 15-15 무승부로 끝난 지난 6월25일 사직 롯데전이 대표적이다. 당시 4회 김도영의 송구 실책이 빌미가 돼 고승민에게 만루 홈런을 맞아 추격을 허용했고, 7회 중견수 최원준과 투수 곽도규의 실책이 연이어 나오면서 스코어가 뒤집히기도 했다.
6-30으로 기록적인 대패를 당한 지난 7월31일 광주 두산전도 6회 유격수 박찬호의 송구 실책이 불씨가 되면서 11실점 빅이닝으로 번지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에이스 제임스 네일은 비자책점만 무려 27점으로 실책이 나올 때마다 유독 흔들렸다.
하지만 KIA는 이렇게 많은 실책에도 무너지지 않고 빠른 회복력을 보였다. 실책이라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거나 압박을 주지 않고 적극적인 플레이를 이끌어낸 코칭스태프의 인내와 독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지난 7월 이범호 KIA 감독은 “도영이나 찬호도 그렇고, 우리 선수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수비 잘하는 선수들이다. 실책이 많지만 열심히 잘하려고 하다 보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며 “대충 하는 수비가 아니라 강한 타구를 막으려다 나오는 실책은 개의치 않는다. 실책 숫자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자기들이 도전해볼 수 있는 공격적인 수비는 충분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실책 숫자는 내년에 3분의 2로 줄 것이고, 그 다음 해에는 반으로 줄 것이다. 경험치가 쌓이면 수비는 훨씬 더 좋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안전하고 보수적인 수비를 한다면 실책 개수는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강하고 어려운 타구라도 잡을 수 있는 것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수비가 강한 팀이라고 보긴 어렵다. 지금까지 시즌 최다 실책을 범한 팀이 우승을 한 경우도 적지 않다. 올해 KIA에 앞서 1983년 해태, 1993년 해태, 1998년 현대, 2003년 현대, 2008년 SK 등 5개 팀이 그해 최다 실책을 딛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가장 최근이 2008년 SK인데 김성근 감독이 이끌던 왕조 시절 중에서도 가장 전력이 강했던 시즌이다. 빈틈이 없어 보이는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왕조를 세웠는데 그해 126경기에서 가장 많은 102개의 실책을 범한 것은 이미지와 다르다. 물론 역대 한 시즌 최다 실책을 기록한 KIA처럼 많은 실책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극적인 수비로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끈한 야구를 펼쳤다. 올해 KIA도 인플레이 타구의 아웃카운트 처리 지표인 수비 효율(DER)은 4위(.668)로 실책 개수에 비해 준수한 수치를 나타냈다.
그 결과 KIA는 2위 삼성을 8경기 차이로 크게 따돌리며 일찌감치 1위 자리를 확정했다. 팀 타율(.301), OPS(.832) 모두 압도적인 1위로 타선의 화력이 워낙 막강했고, 평균자책점 1위(4.39)에 오른 마운드도 크고 작은 부상 악재에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잘 버텼다. 이처럼 강력한 투타 전력으로 치명적인 실책의 충격을 빠르게 잊고, 후유증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