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순위 같은 2순위의 자존심을 살려줄 수 있을까.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가 가장 먼저 2025 신인 선수들과 계약을 마쳤다. 지난 17일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뽑은 덕수고 좌완 투수 정현우(18)와 5억원에 계약하는 등 14명의 선수들과 모두 입단 계약을 마무리했다.
지난 11일 드래프트가 열린 뒤 6일 만에 10개 구단 중 가장 빠르게 계약을 완료했다. 전체 1순위 팀이 가장 먼저 계약을 발표하는 게 스카우트팀 사이의 암묵적인 관례로 여겨진다. 전면 드래프트가 시작된 뒤 지난 2년 연속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행사한 한화가 가장 먼저 신인 계약을 마친 뒤 다른 팀들이 뒤이어 계약을 발표했다.
전체 1순위를 비롯해 가장 먼저 계약을 발표한 팀의 계약금은 다른 팀들의 기준점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9월23일 한화가 전체 1순위로 지명한 좌완 투수 황준서와 3억5000만원에 계약하자 두산은 10월14일 전체 2순위로 뽑은 우완 투수 김택연과 같은 3억5000만원으로 계약을 알렸다. 지명 순위는 늦었지만 같은 3억5000만원을 맞춰주며 선수 자존심을 세워줬다.
올해도 비슷한 그림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다. 정현우에게 전체 1순위 영예를 내줬지만 한화가 전체 2순위로 선택한 전주고 우완 투수 정우주(18)도 그에 뒤질 게 없는 초특급 유망주다. 최고 시속 156km까지 뿌린 고교 무대 최고의 파이어볼러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다. 당장 완성도는 정현우가 낫지만 고점만 보면 정우주가 더 높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좌완 투수가 부족하고, 즉시 전력감 선발이 필요했던 키움의 팀 상황이 정현우를 필요로 했다. 정현우의 계약금 5억원은 키움 팀 내에서 장재영의 9억원(2021년 1차 지명), 안우진의 8억원(2018년 1차 지명)에 이어 구단 역대 3번째 높은 금액. 1순위 프리미엄을 감안해도 예상보다 후한 계약금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키움 구단은 ‘정현우가 가진 재능뿐만 아니라 구단 최초의 전체 1번 지명 선수라는 상징성까지 고려해 계약금을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키움이 무려 5억원을 안기면서 한화가 정우주에게 얼마를 줄지 관심이 모아진다. 다른 해였다면 정우주가 1순위 지명을 받았을 것이다. 1순위 같은 2순위가 굴러들어온 한화도 쾌재를 불렀다. 프로에 와서 시속 160km를 던진 문동주, 김서현에 이어 정우주까지 파이어볼러 트리오를 구축했다. 김경문 한화 감독도 “빠른 볼을 던진다는 것은 좋은 재능을 가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다듬어 좋은 트리오로 만들어야 한다”고 기대했다.
정현우에게 크게 뒤질 게 없는 정우주라는 점에서 한화도 5억원을 맞춰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앞서 같은 파이어볼러 문동주와 김서현도 5억원에 사인했다. 문동주의 경우 KIA에 1차 지명을 받은 내야수 김도영(4억원)에게 밀렸지만 1억원 더 높은 금액으로 신인 최고 계약금을 받았다. 야수보다 투수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되는 KBO 신인 지명 정서를 고려해도 1억원을 더 얹어준 것은 엄청난 대우였다.
정우주의 경우 메이저리그 러브콜을 뿌리쳤다는 점도 프리미엄이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좋은 오퍼가 들어왔지만 정우주는 KBO 드래프트를 신청했다. 지난 2년간 심준석(마이애미 말린스), 장현석(LA 다저스) 등 고교 넘버원 강속구 투수들이 연이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반면 정우주는 일찌감치 “지금 내 수준에서 메이저리그는 멀었다. 한국에서 뛰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싶다”고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만약 정우주가 미국 도전을 택했다면 한화에 1순위 같은 2순위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도 계약금으로 충분한 대우를 기대할 만하다. 2021년 롯데 내야수 나승엽도 미국 진출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롯데에 2차 2라운드 전체 11순위로 지명된 뒤 야수 최고액 5억원에 계약한 바 있다.
나승엽의 경우 케이스가 조금 다르긴 하다. 신인 드래프트 전 미국 진출 의사를 일찌감치 밝혔지만 롯데가 지명권을 날릴 위험성을 감수하며 나승엽을 지명했고, 오랜 설득 끝에 야수 최고액 5억원으로 붙잡은 것이었다. 이듬해부터 KBO는 이 같은 혼선을 막기 위해 신인 드래프트 참가 신청 접수를 받는 제도를 도입했다.
지명을 받고 미국에 간 케이스도 있었다. 2007년 연고팀 KIA에 1차 지명된 진흥고 투수 정영일은 계약금 조건이 맞지 않아 협상이 결렬됐다. 이후 LA 에인절스와 110만 달러에 계약하며 미국에 진출했다. 메이저리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왔고, 2년 유예 기간을 거쳐 2014년 2차 5라운드 전체 53순위로 SK에 지명받아 KBO리그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