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외야수 구자욱(31)이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다. 이 정도면 MVP 후보로도 손색이 없다. 기록도 대단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그라운드에서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구자욱은 지난 11일 대전 한화전에 3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장, 시즌 27~28호 홈런 두 방 포함 5타수 4안타 6타점 3득점을 폭발하며 삼성의 10-1 완승을 이끌었다. 선발투수 코너 시볼드가 견갑 부위 통증을 느껴 3⅓이닝 만에 조기 강판되는 악재 속에서 구자욱이 폭발하며 삼성의 연승을 이끌었다.
1회 첫 타석에선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3회 선제 우월 투런포로 기선 제압을 이끈 구자욱은 4회 2타점 좌전 적시타를 터뜨려 스코어를 6-0으로 벌렸다. 6회에 또 우월 투런포를 터뜨리며 승부에 쐐기를 박고 시즌 100타점을 돌파한 구자욱은 8회 마지막 타석에서도 우월 2루타를 치며 4안타 경기를 펼쳤다.
경기 후 구자욱은 “비가 와서 경기를 안 했으면 큰일날 뻔 했다. 경기가 취소될 수도 있었지만 경기를 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한 게 좋은 결과로 나왔다. 그렇게 좋은 컨디션은 아니었는데 운 좋게 홈런도 나오고, 유독 잘 맞는 날이었다. 이겨서 좋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구자욱은 시즌 120경기 타율 3할3푼(461타수 152안타) 28홈런 101타점 84득점 50볼넷 71삼진 12도루 출루율 .403 장타율 .597 OPS 1.000을 기록 중이다. OPS 2위, 장타율 4위, 타점 6위, 홈런 7위, 타율·출루율 8위, 안타 9위. OPS가 KIA 김도영(1.062) 다음으로 엄청난 타격 생산력을 보여주고 있다. KBO 공식 스포츠투아이 기준 WAR도 야수 부문 4위(5.20)로 국내 선수 중에선 김도영(6.75)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 7월20일 대구 롯데전에서 사구로 인한 왼쪽 종아리 부상으로 9경기를 결장했지만 데뷔 첫 30홈런에 2개만 남겨놓고 있고, 2017년(107점) 이후 7년 만에 100타점 시즌을 만들었다.
구자욱은 “30홈런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다. 100타점을 한 것도 (홈런 치고 난 뒤) 덕아웃에 들어와서 알았다. 크게 개의치 않는다. 30홈런은 치면 치는 거고, 못 치면 못 치는 거다. 기록에 의미를 담아두면 경기하는 데 지장이 있다. 상황에 맞는 타격을 해야 한다. 지금도 홈런은 충분히 많이 쳤다고 생각한다”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구자욱의 진심은 경기 중 플레이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삼성이 8-1, 7점 차로 넉넉하게 리드한 8회초 1사 3루. 대타 강민호의 중견수 뜬공 때 3루 주자 구자욱이 홈으로 전력 질주했다. 높이 떴지만 깊은 타구가 아니었고, 홈에서 아슬아슬한 승부가 됐다. 하지만 구자욱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홈플레이트를 먼저 쓸면서 추가 득점을 올렸다. 7점 차이로 앞선 8회 경기 후반이었고, 승기가 굳어진 상황이라 무리할 필요가 없었지만 구자욱은 몸을 사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구자욱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선수의 몫”이라면서 “한 선수의 타율이 깎일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열심히 뛰었다. 그런 게 우리 팀워크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선수들의 사기도 올라가고, 팀 분위기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구자욱의 전력 질주와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덕분에 강민호는 희생플라이로 타점 하나를 올리며 타율이 깎이지 않을 수 있었다.
주장으로서 남다른 리더십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구자욱은 새식구가 될 어린 사자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열린 2025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은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대구고 좌완 투수 배찬승을 선택하는 등 11명의 신인 선수들을 지명했다.
2012년 2라운드 전체 12순위로 삼서엥 입단한 구자욱은 “프로에 지명됐다고 해서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기 1군에 올라오기까지 정말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우리 팀뿐만 아니라 프로야구라는 곳이 다 그렇다. 나도 처음 프로에 입단했을 때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고 방심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후회스러운 날이었다. 꿈을 이뤘다는 것보다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꿈을 이룰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의미 있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같은 대구고 출신 후배 배찬승이 1라운드에 뽑혔지만 구자욱은 특별 대우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여기는 사회이기 때문에 고교 후배라고 해서 그럴 건 없다. 열심히 하는 선수를 칭찬할 것이고, 열심히 안 하면 잘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냉정함을 보인 구자욱은 “프로에 와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선수들도 다 좋아할 거고, 팬분들도 많이 응원해주실 것이다. 본인들 하기에 따라 평가를 받을 것이다”는 당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