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이에 홈런 4개 그냥 치는 게 아니다. 뭔가 있다는 것이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김경문 감독은 지난 6월초 부임한 뒤 2년 차 내야수 문현빈(20)의 타격 솜씨를 눈여겨봤다. 지난해 고졸 신인 역대 7번째 100안타(114개) 시즌을 보내며 성공적으로 데뷔한 문현빈은 올해 주전 2루수로 시작했지만 2년 차 징크스 시달렸다. 4월 중순 2군에 잠깐 다녀온 뒤 백업으로 기용됐다.
김경문 감독이 온 뒤에도 문현빈의 출장 기회는 많지 않았다. 지난 6월12일 잠실 두산전에서 9회 대타로 나와 깜짝 스퀴즈 번트로 결승점을 뽑아내기도 했지만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신인 황영묵이 2루에서 펄펄 날며 선발로 중용됐다. 황영묵이 지칠 쯤에는 베테랑 안치홍이 2루 수비에 복귀하면서 맹활약했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은 문현빈을 외면하지 않고 1군에 남겨뒀다. “나이는 어리지만 타격에 재능이 있는 선수다. 그 나이에 홈런 4개 그냥 치는 게 아니다. 뭔가 있다는 것이다. (안 쓰기에는) 타격 자질이 아깝다”며 문현빈의 방망이를 살리고 싶어 했다. 후반기 초반 노시환이 어깨 부상으로 빠졌을 때 문현빈을 3루에 기용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5강 싸움의 분수령이었던 지난 3일 대전 두산전에 문현빈을 1번 지명타자로 모처럼 선발 라인업에 넣었다. 앞서 10경기 타율 4할(15타수 6안타) 6타점으로 좋은 타격감을 보이고 있었다. 김 감독은 “요즘 현빈이의 타격 페이스 좋다. 공격적으로 득점을 올리기 위해 타격감이 좋은 현빈이를 지명타자로 기용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지난 4월7일 고척 키움전 이후 149일 만에 1번 리드오프로 나선 문현빈은 1회 첫 타석에서 유격수 뜬공 아웃됐지만 3회 중전 안타를 치고 나갔다. 이어 0-1로 뒤진 5회 역전 스리런 홈런을 치며 승부를 뒤집었다. 두산 선발 최원준의 3구째 바깥쪽 슬라이더를 밀어쳐 좌측 담장을 넘겼다. 비거리 120m, 시즌 5호 홈런. 역전 결승 홈런이었다.
7회말 우월 2루타까지 터뜨린 문현빈은 5타수 3안타 3타점 2득점 맹타로 한화의 7-1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후 김 감독은 “문현빈이 필요한 타이밍에 장타로 경기를 뒤집으며 흐름을 가져왔다”고 칭찬했다. 2연패를 끊은 6위 한화는 5위 KT에 2경기 차이로 따라붙었다. 4위 두산과 격차도 2.5경기로 좁히며 5강 희망을 높였다.
경기 후 문현빈은 “팀이 5강 싸움을 하고 있는데 감독님이 나를 기용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기쁜 마음이 들었고, 뭔가 좀 더 보여드리고 싶었다”며 홈런 상황에 대해선 “외야 플라이를 치자는 생각으로 했는데 타구에 힘이 실려 운 좋게 넘어갔다. 밀어서 넘긴 건 프로에 와서 처음이다”고 말했다.
제한된 출장 기회 속에서도 조금씩 타격감을 끌어올린 문현빈은 “항상 경기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연습할 때도 특정 상황을 이미지에 그려놓고 했다”며 “감독님께서도 ‘항상 준비 잘하고 있어라.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고 계속 좋은 말씀으로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셨다”고 김 감독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3월까지 시즌 극초반 타격 페이스가 좋았던 문현빈은 4월 이후 몇 차례 결정적인 병살타를 치면서 침체에 빠졌다. 수비까지 흔들리면서 데뷔 후 처음으로 2군에 다녀왔고, 1군 복귀 후에도 주전이 아니었다. 전형적인 2년 차 징크스로 시련의 시간이었지만 문현빈은 좌절하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그는 “1군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다. 팀도 5강 싸움을 하고 있고, 경기를 보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좋은 경험이 되고 있다”며 “시즌 초반 결과가 안 좋다 보니 스스로 뭔가 결과를 만들려고 한 것 같다. 일희일비를 하면서 결과에 의존하고, 더 깊이 빠져들었다”고 부진했던 시기를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