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현대 야구가 시작된 이래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기록이 있다. 투수가 홈런을 하나도 허용하지 않고 시즌을 마치는 것이다. 물론 규정이닝이라는 기준을 전제로 한 얘기다.
그런 대기록에 도전하는 투수가 있다.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의 우완 다카하시 히로토(22)다. 풀 시즌 3년 차인 그는 1일까지 17경기에 등판, 11승 2패를 올렸다. 다승 선두인 12승의 스가노 토모유키(요미우리)를 바짝 뒤쫓는 형국이다. 5위에 처진 팀 전력을 감안하면 상당한 실적이다.
발군인 것은 평균자책점(ERA) 부문이다. 0.98로 양대 리그 통틀어 유일한 0점대를 자랑한다. 이런 수치가 가능한 것은 장타 억제력이다. 시즌 내내 467타자를 맞아, 1개의 홈런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투수 횟수가 119.2이닝으로 규정이닝에는 미치지 못한다. 팀이 120게임을 치른 상황이어서 0.1이닝이 부족한 셈이다. 이걸 채우면 ‘ERA 1위’와, ‘피홈런 제로’라는 수식어는 다시 장내로 진입하게 된다. 다음 등판은 주중 3연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프로야구(NPB)는 143게임 제의 정규시즌을 치른다. 따라서 종료 시점의 규정이닝은 143이닝이 된다. 다카하시 히로토의 경우 23.1이닝을 채우면 된다. 이제까지의 추이를 보면, 앞으로 3~4번 더 선발로 나서면 가능한 수치다.
NPB는 양대 리그제가 확립된 1950년 이후 ‘피홈런 제로’ 투수는 나오지 않았다. 이제까지는 2개가 한계(최저)였다. 1956년 이나오 가즈히사(니시데쓰), 2012년의 브라이언 울프(니혼햄), 2023년 야마모토 요시노부(오릭스) 등이 각각 기록했다.
여기에는 결정적인 요소가 작용한다. 우선은 NPB의 극심한 투고타저 현상이다. 흔히 ‘날지 않는 공’이라 부를 정도로 반발력에 대한 의문이 계속된다. 이로 인해 3할 타자가 양 리그 합해 3명 밖에 없다. 홈런 20개 이상도 4명뿐이다. 반면 투수들은 펄펄 난다. ERA 1점대가 7명(센트럴 6명, 퍼시픽 1명)이나 된다.
게다가 홈구장의 이점도 크다. 주니치의 홈인 나고야의 반테린돔은 전형적인 투수 친화적인 구장이다. 중앙 펜스의 거리가 122m나 되고, 좌우측도 100m에 달한다. 그리고 담장 높이가 4.8m나 된다. 웬만한 비거리나 각도로는 넘기기 힘든 구조다.
그러니까 타자들에게는 악몽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다카하시 히로토는 올 시즌 17번 중 10번을 여기서 등판했다. 71.1이닝 동안 자책점이 4점에 불과하다. ERA를 따지면 0.50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피홈런 제로’는 대단한 기록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메이저리그는 첫 흑인 선수였던 재키 로빈슨이 등장한 1947년 이후를 통합시대라고 부른다. 이후 가장 적은 피홈런 투수는 레지 클리블랜드(보스턴 레드삭스)다. 그는 1976년에 단 3개의 롱볼(long ball)만 허용했다.
비교할 만한 전설들의 업적이 있다. 놀란 라이언은 단축 시즌이던 1981년에 149이닝을 던지면서 홈런 2개를 맞았다. 그렉 매덕스는 1994년에 202이닝 동안 피홈런이 4개에 그쳤다.
의외의 케이스가 KBO리그에 있다. 1988년의 최일언(OB)이 115.2이닝을 던지며 홈런을 하나도 맞지 않고 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당시는 7구단 체제였다. 규정이닝도 지금의 144이닝보다 적은 108이닝이었다.
평균자책점 1위를 7차례나 차지한 선동열(해태)도 ‘피홈런 제로’ 시즌은 없었다. 1990년 190.1이닝을 던지며 1개를 맞은 것이 최고 기록이다.
다카하시 히로토는 주니치의 본거지인 아이치현 출신이다. 주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20년 드래프트 1번으로 입단했다.
2군 수업을 마치고, 2022년부터 1군에 데뷔했다. 그해 6승 7패, 이듬해(2023년) 7승 11패로 나쁘지 않았다. 특히 2년 연속 ERA가 2점대 중반을 유지했다.
186cm, 86kg의 체격에 최고 150㎞ 후반, 평균 150㎞ 초반의 구속을 자랑한다. 스플리터를 결정구로 쓰면서, 슬라이더와 커브, 커터 등도 던진다.
2023년 WBC 대표로 선발돼, 한국전에서 13-4로 앞서던 9회 등판했다. 3타자를 맞아 안타나 4사구 없이 마무리했다. 박건우가 삼진, 강백호와 양의지는 내야 땅볼로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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