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랑 할 때마다 (류현진이) 만나는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에이스 류현진(37)은 올해 KT 위즈를 상대로만 무려 6경기를 선발등판했다. 10개 구단 체제가 시작된 2015년 이후로 선발투수가 특정팀 상대로 한 시즌에 6번이나 등판하는 건 좀처럼 보기 힘들다. 특정팀에 강세가 있다면 전략적으로 등판일을 조정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지만 올해 류현진은 KT에 특별히 강한 것도 아니었다.
지난 3월29일 대전 경기(6이닝 8피안타 무사사구 9탈삼진 2실점), 6월6일 수원 경기(6이닝 5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 승리), 7월3일 대전 경기(7이닝 7피안타 1피홈런 무사사구 8탈삼진 2실점 패전)은 잘 던졌지만 4월24일 수원 경기(5이닝 7피안타 2볼넷 4탈삼진 7실점 5자책 패전), 7월31일 수원 경기(5이닝 12피안타 1피홈런 1볼넷 3탈삼진 6실점 5자책 승리)는 부진했다.
5위 싸움의 ‘빅매치’로 관심을 모았던 8월31일 대전 KT-한화전에도 류현진이 선발로 나섰다. 일부러 로테이션을 조정한 건 아닌데 KT와의 시리즈 때마다 꼭 한 번씩 류현진이 나왔고, 시즌 마지막 맞대결까지 등판하게 됐다.
류현진을 한 해 6번이나 상대하게 된 이강철 KT 감독은 경기 전 “한화랑 할 때마다 (류현진을) 만난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은 아닌 거 같은데”라며 웃은 뒤 “그냥 센 투수 만나는 게 좋다. 괜히 다른 투수 만나서 (타선이) 말리면 같이 던지는 선발(윌리엄 쿠에바스)도 어려울 수 있다”며 류현진과의 대결이 싫지 않은 듯했다.
투수에게 가장 큰 무기는 생소함이고, 투수와 타자가 자주 만나면 만날수록 타자가 유리하다. 이미 5번이나 상대한 류현진이기 때문에 KT 타자들은 충분히 익숙해져 있었고, 따로 전력 분석을 할 것도 없었다.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이날 KT 선발 쿠에바스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도 류현진과 대결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강철 감독의 은근한 자신감은 이날 KT의 6-2 승리로 이어졌다. 류현진은 5이닝 7피안타(3피홈런) 1볼넷 4탈삼진 3실점으로 시즌 8패(8승)째를 안았다. 5회까지 3실점으로 막으며 나름 선발로서 최소한의 몫은 했지만 피홈런 3방으로 경기 흐름을 내줬다. 5회까지 투구수가 84개로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6회부터 불펜에 마운드를 넘긴 류현진은 올해 KT전 6경기를 2승3패 평균자책점 4.50으로 마쳤다.
3회초 배정대가 류현진의 3구째 몸쪽 낮은 체인지업을 기술적으로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기며 기선 제압을 이끌었다. 이어 4회초 황재균과 문상철의 백투백 홈런으로 KT가 확실히 주도권을 잡았다. 황재균은 류현진의 가운데 몰린 투심 패스트볼을 놓치지 않고 중앙 담장을 훌쩍 넘겼다. 비거리 125m, 시즌 12호 홈런. 그 중 3개가 류현진에게 뽑아낸 것이었다. 류현진이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까지 홈런을 하나도 못 쳤던 황재균이지만 올해는 홈런 3방으로 새로운 천적 관계를 형성했다.
황재균에 이어 문상철도 류현진의 한가운데 높게 들어온 커터를 공략, 좌중월 솔로포로 장식했다. 백투백 홈런. 지난 6월23일 광주 KIA전 더블헤더 1차전에서 4회말 김도영, 최형우에게 연속 솔로포를 맞은 데 이어 류현진의 시즌 두 번째 백투백 홈런 허용. 3피홈런 경기도 당시 KIA전에 이어 시즌 두 번째였다. KBO리그 통산으로는 4번째 3피홈런 경기로 한 시즌 두 번은 처음이다. 메이저리그에선 총 9번의 3피홈런 경기가 있었는데 2017년 LA 다저스 시절 4번 있었다.
류현진과 선발 맞대결을 벌인 쿠에바스도 이강철 감독 기대대로 집중력을 발휘했다. 4회까지 61개의 공으로 한화 타선을 퍼펙트로 압도했다. 5회말 노시환에게 솔로 홈런을 맞으면서 퍼펙트가 깨졌지만 추가 실점 없이 6이닝 3피안타(1피홈런) 1볼넷 9탈삼진 1실점 호투로 KT의 6-2 승리를 이끌었다. 올해 한화에 3번이나 3연전 스윕을 당하며 상대 전적 6승10패로 고전한 KT였지만 5위 싸움 승부처가 된 마지막 경기를 잡고 아쉬움을 씻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