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한여름 질주가 무섭다. 거칠 것 없는 기세로 5강 경쟁에 뛰어든 한화의 힘은 투수진, 그 중에서도 철벽 불펜을 빼놓곤 설명이 되지 않는다.
타팀에서도 “한화 불펜이 제일 좋다. 공 빠른 투수들도 많고, 전원 필승조였던 작년 LG 불펜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경쟁력 있다. 지난해 고우석, 김진성, 함덕주, 유영찬, 백승현, 정우영, 박명근 등 강력한 불펜의 힘으로 통합 우승을 차지한 LG처럼 한화도 양적, 질적으로 어느 팀에도 밀리지 않는 불펜을 자랑하고 있다.
사실 전반기만 해도 한화 불펜은 약점이었다. 전반기 구원 평균자책점 8위(5.28)로 20번의 역전패를 당했다. 마무리 주현상은 리그 최고 위력을 떨쳤지만 그 앞을 책임질 투수가 이민우 외에는 마땅치 않았다. 믿었던 필승조 박상원과 김범수의 부진, 김서현 등 젊은 투수들의 성장통이 겹쳤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확 바뀌었다. 후반기 구원 평균자책점 2위(3.91)로 1위 KT(3.87) 다음이다. 마무리 주현상이 꾸준함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팀 홀드(27개)가 가장 많을 만큼 중간이 강해졌다. 후반기 1점차 5승4패, 2점차 4승2패로 1~2점차 접전 승부에서 9승6패(승률 .600)로 강한 것도 불펜의 힘이 절대적이다.
박상원이 후반기 19경기에서 24⅔이닝을 던지며 2승1세이브5홀드 평균자책 1.46으로 완전히 부활한 것이 크다. 선발 다음에 붙는 롱릴리프로 멀티 이닝을 던지며 감을 잡은 뒤 리그 최강 불펜으로 탈바꿈했다. 김서현도 최근 난조를 보이긴 했지만 투구폼을 하나로 고정한 뒤 강력한 슬라이더로 18경기(16⅔이닝) 1패6홀드 평균자책점 3.24로 활약하며 폭풍 성장했다.
여기에 한승혁이 18경기(17이닝) 3승8홀드 평균자책점 2.65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전반기까지 주자 상황에 따라 기복이 있는 모습이었지만 최근에는 멀티 이닝도 너끈하게 소화할 만큼 안정적이다. 한승혁, 박상원, 김서현이 마무리 주현상과 함께 확실한 4인 필승조가 구축돼 경기 중후반을 완벽히 책임지고 있다.
필승조뿐만 아니라 추격조 김규연이 14경기(15이닝) 2홀드 평균자책점 4.80으로 힘을 보태고 있고, 2차 드래프트에서 넘어온 이적생 이상규도 지난 24일 잠실 두산전에서 2이닝 무실점으로 이적 첫 승을 신고하는 등 9경기(11이닝) 1승 평균자책점 3.27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강속구를 던진다. 직구 평균 구속이 시속 145km를 넘는다. 한승혁, 박상원, 김서현, 김규연은 150km가 넘는다. 불펜 특성상 강속구 투수들이 유리한데 경기 중후반 빠른 공으로 찍어 누르며 압도할 수 있는 투수가 양적으로 풍부하다 보니 불펜이 강하지 않을 수 없다. 마무리 주현상은 “누가 나가더라도 다 막아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서로 뒤에 투수들을 믿고 더 열심히 던지다 보니 다들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양적으로 자원이 넘치는 만큼 불펜 혹사도 없다. 시즌 후반으로 향하는 시점인데도 한화 불펜은 올해 3일 연투가 전무하다. 전임 최원호 감독부터 지금 김경문 감독까지 불펜 관리는 철저하다. 10개팀 중 유일하게 3연투가 없는 팀으로 2연투(88회), 멀티이닝(107회)도 리그에서 3번째 적다. 김경문 감독은 2연투한 투수는 아예 등판조에서 빼며 불펜이 아닌 덕아웃에 대기하게 한다. 팀 상황상 한 번쯤 대기할 법도 한데 그렇게 안 한다. 강속구 불펜들이 시즌 후반인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제 공을 뿌릴 수 있는 이유다.
김경문 감독의 부름을 받아 후반기부터 합류한 양상문 투수코치 효과도 크다. 박상원의 활용법을 바꿔 잃어버린 투구 밸런스를 잡게 하고, 김서현을 여유 있는 상황에서부터 조금씩 레벨업시키며 단기간 전력으로 만들었다. 확실한 좌완 불펜 부재 속에도 한 박자 빠른 투수 교체 타이밍으로 위기 상황을 미리 예방하거나 최소화했다.
야구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각자 개성이 다른 선수들을 이해하고 동기 부여를 이끌어낸 것도 크다. 한화에 오자마자 투수들에게 손편지를 직접 써서 진심을 전한 양상문 코치가 온 뒤 그의 요청으로 대전 홈구장 외야 불펜에는 ‘내가 던지는 이 공 안에 최강 한화를 외치는 팬들이 있다’는 문구가 걸렸다.
박상원은 “불펜 문을 열고 나갈 때 문구가 보이는데 많은 감정을 느낀다. 매진 신기록도 세워주시고, 우리 선수들 기죽지 않게 힘을 주고 도와주시는 팬분들을 위해 더 잘해야 한다”고 책임감을 드러냈다. 김서현은 “마운드 올라갈 때는 정신이 없지만 항상 그 문구를 보고 간다.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가 공 하나 던질 때마다 팬분들께서 환호해주신다. 그 문구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