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끝날 것만 같았던 유리몸 투수가 트레이드 후 화려하게 부활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생애 첫 사이영상을 노리는 좌완 파이어볼러 크리스 세일(35)의 활약에 전 소속팀 보스턴 레드삭스는 땅을 칠 노릇이다.
세일은 지난 18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LA 에인절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등판, 6이닝 6피안타 2볼넷 10탈삼진 2실점 호투로 애틀랜타의 11-3 승리를 이끌며 시즌 14승(3패)째를 올렸다.
1~2회 삼진을 2개씩 잡으며 구위를 뽐낸 세일은 3회 무사 1,2루에서 놀란 샤누엘을 유격수 땅볼로 6-4-3 병살타를 이끌어냈다. 계속된 2사 3루에서 케빈 필라를 루킹 삼진 잡고 실점 없이 위기를 넘긴 잡은 세일은 4~5회 연속 삼자범퇴로 무실점을 이어갔다. 6회 1사 후 샤누엘에게 안타, 필라에게 1타점 2루타를 맞은 뒤 폭투로 추가 실점하긴 했지만 애틀랜타 타선의 화끈한 득점 지원 속에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총 투구수 95개로 최고 시속 98.5마일(158.5km), 평균 95.5마일(153.7km) 포심 패스트볼(43개) 중심으로 슬라이더(28개), 체인지업(22개), 싱커(2개)를 구사했다. 탈삼진 10개 중 8개를 포심 패스트볼로 잡아낼 만큼 구위가 좋았다.
이로써 세일은 올 시즌 23경기에서 140⅔이닝을 던지며 14승3패 평균자책점 2.62 탈삼진 187개 WHIP 1.00 피안타율 2할1푼을 기록했다. 내셔널리그(NL) 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1위, WHIP 3위, 피안타율 5위, 이닝 10위에 올라있다.
이닝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주요 3개 부문 1위로 투수 트리플 크라운 가능성을 높였다. 지금까지 총 38번 나온 기록이지만 2010년대 이후 3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2020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셰인 비버가 가장 최근으로 NL에선 2011년 LA 다저스 커쇼가 마지막 달성자로 남아있다.
지금 페이스라면 생애 첫 사이영상도 유력하다. 2010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데뷔한 세일은 2012년부터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선발이자 ‘닥터K’로 떠올랐다. 2015년(274개), 2017년(308개) 아메리칸리그(AL) 탈삼진 1위를 두 번 차지했다. 2012~2018년 7년 연속 올스타에 뽑혔고, 사이영상 5위에도 6번이나 들었지만 2017년 2위가 최고로 사이영상과는 인연이 없었다.
2018년 보스턴의 월드시리즈 우승 주역으로 활약했지만 5년 1억4500만 달러 연장 계약 체결 후 부상의 늪에 빠지면서 사이영상은 영영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2019년 8월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을 마치더니 연장 계약 발동 첫 해였던 2020년 토미 존 수술로 아예 시즌 아웃됐다. 2021년 8워 복귀했지만 2022년 시즌을 앞두고 갈비뼈 피로 골절로 장기 이탈했고, 7월 복귀 후 2경기 만에 강습 타구에 새끼손가락을 맞아 부러졌다. 이후 재활 중 오토바이 사고로 손목이 골절돼 시즌이 끝났다.
지난해에도 6월 어깨 염증으로 두 달 넘게 이탈하며 20경기(102⅔이닝) 6승5패 평균자책점 4.30의 평범한 성적을 남겼다. 계약 4년간 규정이닝 한 번 못 채우고 31경기(151이닝) 11승7패 평균자책점 3.93. 계약 기간이 1년 남은 상황에서 보스턴은 세일을 트레이드로 정리했다. 내야 유망주 본 그리솜을 받으면서 2024년 세일의 연봉 2750만 달러 중 1700만 달러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트레이드했다.
하지만 애틀랜타는 트레이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2년 3800만 달러에 연장 계약하며 부활을 기대했다. 그 기대에 세일이 제대로 부응하고 있다. 세일은 18일 에인절스전 승리 후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야구를 하는 게 다시 즐거워졌다”며 “지난 몇 년간 기록에 남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누구나 힘든 일을 겪는다. 그걸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사이영상에 대해 세일은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팀 승리를 최대한 많이 쌓고 싶다”고 NL 와일드카드 3위에 올라있는 팀의 가을야구가 먼저라고 강조했다. 팀 동료 거포 마르셀 오즈나는 “세일은 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며 이미 내겐 사이영상이다”고 한껏 치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