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잔류일까. 아니면 고국 복귀일까. 계약 만료 직전 8이닝 무실점 감동 역투를 펼친 시라카와 케이쇼(두산 베어스)의 선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시라카와는 지난 16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KT 위즈와의 시즌 12차전에 선발 등판해 8이닝 4피안타 1사구 3탈삼진 무실점 102구 인생투로 시즌 4번째 승리를 챙겼다. 팀의 5-0 완승이자 2연승을 이끈 엄청난 호투였다.
2점의 리드를 안고 경기를 출발한 시라카와. 1회말 멜 로하스 주니어-황재균 테이블세터를 연달아 외야 뜬공 처리한 가운데 강백호, 오재일 상대 연속 안타를 맞고 1, 3루 위기에 몰렸지만, 문상철을 3루수 땅볼로 잡고 실점하지 않았다.
2회말은 선두타자 김상수를 사구로 내보내며 무사 1루에 처했다. 이번에는 천성호를 2루수 야수선택, 배정대를 우익수 뜬공, 심우준을 루킹 삼진 처리, 깔끔하게 이닝을 끝냈다.
시라카와는 4-0으로 앞선 3회말부터 제 궤도에 진입했다. 로하스-황재균-강백호 순의 상위 타선을 상대로 탁월한 땅볼 유도 능력을 뽐내며 공 6개로 삼자범퇴를 만들었고, 4회말 오재일-문상철-김상수 상대로도 세 타자 연속 범타를 유도했다. 15개의 공으로 아웃카운트 3개를 잡아냈다.
마의 5회말도 순조로웠다. 여전히 4-0으로 리드한 가운데 선두타자 천성호와 배정대를 내야땅볼, 심우준을 초구에 좌익수 뜬공으로 막고 손쉽게 승리 요건을 채웠다. 5회까지 투구수도 61개에 불과했다.
후반부 투구도 압도적이었다. 6회말 로하스 상대 우전안타를 맞으며 4이닝 만에 선두타자를 내보냈으나나 황재균, 강백호를 연달아 유격수 뜬공, 오재일을 헛스윙 삼진 처리, SSG 랜더스 시절이었던 6월 21일 인천 NC 다이노스전 이후 약 두 달 만에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했다. 두산 이적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라카와는 7회말 또한 안정적으로 책임졌다. 1사 후 김상수 상대 좌전안타를 내준 상황에서 천성호를 2루수 땅볼, 배정대를 1루수 땅볼로 막고 데뷔 첫 퀄리티스타트 플러스까지 달성했다. 6월 21일 인천 NC전 6⅓이닝 2실점을 넘어 인생투를 경신한 순간이었다.
시라카와는 8회말에도 씩씩하게 마운드에 올라 심우준, 로하스, 황재균을 11구 삼자범퇴 처리, 8이닝 무실점 역투를 완성했다. 단기 외국인투수로 KBO리그에 입성해 평균자책점 7점대로 고전하던 일본 순수 청년의 대반전투였다.
경기 후 만난 시라카와는 “두산에 와서 생각보다 내 역할을 잘 못해서 아주 힘들고 괴로웠다. 난 항상 팀 승리를 위해서 전력을 다했고, 준비도 잘했지만, 생각보다 결과가 나오지 않아 괴롭고 힘들었다”라고 속내를 털어놓으며 “오늘도 평소와 다른 건 없었다. 늘 그렇듯 기합을 넣고 마운드에 올랐는데 이승엽 감독님과 독립리그 시절 감독님의 ‘초구 스트라이크에 신경 쓰자’라는 조언이 도움이 됐다”라고 호투 비결을 밝혔다.
이날 8회말까지 투구수는 102개. 완봉승 욕심은 없었을까. 시라카와는 “선수 입장에서는 당연히 9회에도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래도 팀 승리가 우선이다. 팀에서 교체 지시도 내려왔다. 팀이 이겨서 기쁘고 행복하다”라고 해맑게 웃었다.
그 동안 부진을 거듭했던 시라카와는 이날 인생투를 펼치며 처음으로 두산 팬들의 열렬한 환호성을 들었다. 두산 팬들은 8회말 종료 후 시라카와의 이름을 끊임없이 연호하며 일본 순수 청년의 반등을 반겼다.
시라카와는 “정말 너무 기뻤다. 너무 행복했다. 솔직히 조금 눈물이 날 뻔했다”라고 팬들을 향해 감사를 표했다.
두산은 6주 단기 외국인투수로 두산에 합류해 어느덧 계약 만료가 임박한 시라카와와의 계약 연장을 추진 중이다. 기존 외국인투수 브랜든 와델의 어깨 회복이 더뎌지며 그가 돌아올 때까지 시라카와로 그 자리를 계속 메운다는 계획이다. 두산 관계자는 “KBO리그 잔여경기 일정이 발표되면 본격적으로 재계약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변수는 시라카와의 마음이다. 일본프로야구 진출이 꿈인 시라카와가 만일 고국에서 신인드래프트를 준비한다면 두산은 브랜든의 자리를 2군급 5선발로 채워야 한다. 두산은 시라카와의 평균자책점 7점대 부진에도 동행 연장을 결정했는데 이날 8이닝 무실점 역투를 펼쳐 재계약 열망이 더욱 강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시라카와에게 향후 거취를 언급하자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또 두산에서 더 할지 안 할지는 내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난 그저 현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앞으로의 상황에는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시라카와에게 끝으로 8이닝 무실점 인생투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야구선수가 또 야구가 이렇게 8이닝을 던지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 투구가 더 기쁘다”라며 “오늘의 투구가 향후 일본프로야구 진출 목표에 조금 더 다가서는 원동력과 힘이 될 것 같다. 기쁘고 특별하다”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