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잠실 두산전, 3-0으로 앞서고 있었던 3회말 1사 1,3루 상황에서 손호영에게 상황이 발생했다. 투수 박세웅은 양의지를 3루수 땅볼로 유도했다. 손호영의 정면으로 향했고 무난하게 병살타를 만들어내는 듯 했다.
그런데 타구가 글러브에 끼였다. 꽉 끼여서 손호영이 아무리 끄집어 내려고 해도 빠지지 않았다. 손호영은 온몸으로 아쉬움을 표현했다. 3루 주자가 홈을 밟았고 1사 1,2루 위기도 계속됐다. 이후 양석환에게 적시타까지 허용했다. 무실점으로 끝나야 할 이닝이 2실점으로 둔갑했다. 이 대목에서 경기 흐름이 두산 쪽으로 넘어갔고 롯데는 결국 3-4로 역전패를 당했다.
손호영도 처음 겪는 황당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이 경기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김태형 감독도 “어제 같은 상황은 정말 어이없는 경우”라고 역시 허탈한 웃음을 지었고 “그 타구가 정상적으로 더블 플레이로 연결됐다면 경기 분위기는 당연히 달라졌다. 거기서 상대의 맥을 딱 끊고 경기를 풀어갈 수 있었다”라고 아쉬움을 곱씹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던 손호영이지만 계속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손호영은 “계속 생각이 났다. 생각하면 안되는데 집에 가서도 생각나고 팬 분들도 메시지를 많이 보내주셨다. 그래서 안 볼 수가 없더라”라고 되돌아봤다.
손호영은 자책했다.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었다. 15일 경기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글러브를 바꿔서 경기에 나섰고 이후 글러브를 재정비 했지만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손호영은 “항상 글러브를 닦고 관리를 한다. 닦으면서 글러브가 늘어났나 안 늘어났나 보는데 글러브 웹이 늘어나지 않았다”라면서 “양의지 선배 타구가 회전수도 많아서 그렇게 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손호영은 자책했다. 그리고 당시 투수였던 박세웅에게도 미안함 마음을 전했다. 그는 “그렇게 중요한 상황에서 공이 껴본 적이 처음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결국 내 글러브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니 내 잘못이다”라면서 “항상 (박)세웅이만 나오면 제가 사고 하나씩 치더라. 항상 세웅이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다. 미안하다고 말을 했는데, 티를 내면 또 안되니까 세웅이 눈도 못 마주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멋쩍게 웃었다.
그럼에도 손호영은 이제 매일 경기에 나서야 하는 레귤러 선수. 앞선 경기의 트라우마와 악몽을 지워버려야 했고, 스스로 극복했다. 16일 사직 키움전 손호영은 3번 3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1회 1사 2루에서 선제 결승 투런포를 쏘아 올리며 팀의 4-0 승리를 이끌었다. 아울러 손호영은 3루 방면 강습 타구, 어려운 코스의 타구들을 물 샐 틈 없이 처리해 내면서 견고함을 과시했다.
그는 “오늘은 수비에서 더 집중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타석보다는 수비에서 더 집중을 많이 하게 되더라”라면서 “키움이 빠른 타자들이 많았고 또 타구들도 평범하게 오지 않았다. 구장 조명에 타구가 들어갔다가 나오더라. 또 사고가 나는 거 아닌가 조마조마하면서 수비를 했다”고 말했다. 특히 8회 선두타자 김혜성의 타구가 바운드가 크게 튀면서 3-유간으로 향했다. 손호영이 영리하게 쫓아가서 유려하게 수비를 펼치며 아웃을 시켰다. 이 타구 역시 공이 조명 속에 숨었다고.
올해 트레이드로 합류해 사직구장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빠르게 적응했다. 그는 “항상 타구가 조명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항상 미리 생각하고 있어서 대처를 잘했다”라고 웃었다.
이날 타석에서 홈런을 치고 최근 10경기 성적도 타율 4할2푼9리(42타수 18안타) 3홈런 12타점으로 활약 중이다. 하지만 그는 “타격감이 막 좋지 않더라. 밸런스도 안 맞는다. 홈런은 노림수가 잘 맞아 떨어졌다. 원래 첫 타석에서 홈런이 나오면 그 다음 타석에서도 결과가 잘 나와야 하는데 밸런스가 안 좋다 보니까 안 좋은 것 같다. 연습을 많이 해서 밸런스를 다시 잡아가야 할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아직은 “내가 팀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선수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손호영. 하지만 현재 손호영은 대체불가 자원이 되고 있다. 올해 햄스트링 부상으로 두 차례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롯데는 손호영의 공백을 절감하며 시즌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햄스트링 걱정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손호영이다. 그는 “주사 치료는 이제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 아파서 주사를 맞는 게 아니다. 아프지 않은데 관리 차원에서 주사를 맞는 것이다. 막 신경 쓰이지 않는 것 같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는 기억을 빠르게 지워 버리며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손호영은 확실한 주전 선수로 거듭났다는 것을 이번 해프닝을 통해 다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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