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타로 바뀔 줄 알았는데…" 선수도 놀랐다. 한 번 믿으면 끝까지, 이게 바로 김경문표 '뚝심 야구'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24.08.10 11: 50

모두가 대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타석을 준비하던 타자도 속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감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김경문(66) 감독의 믿음에 황영묵(25)은 역전 결승타로 보답했다. 
지난 9일 대전 키움-한화전. 4-0으로 앞서던 경기를 4-5로 역전당한 한화는 7회말 기회를 잡았다. 2사 후 노시환의 우중간 빗맞은 안타를 시작으로 채은성, 안치홍이 연속 볼넷을 골라내 만루 찬스를 만들었다. 여기서 이날 경기 3타수 무안타로 침묵 중이던 황영묵의 타석이 돌아왔다. 
이날 황영묵은 2회 3루 땅볼, 3회 2루 땅볼, 6회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지난 2일 대전 KIA전부터 10타수 연속 무안타. 최근 들어 선발 제외 후 교체 출장이 늘어나면서 타격감이 다소 떨어진 상태였다. 전날(8일) 대구 삼성전에서 11경기 만에 선발 복귀했지만 결과는 4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좋지 않았다. 

한화 황영묵. /한화 이글스 제공

한화 김경문 감독. 2024.06.04 / rumi@osen.co.kr

시즌 타율은 3할대(.304)이지만 최근 타격감을 봤을 때 대타 교체 타이밍이었다. 한화 벤치에는 하주석, 이도윤, 문현빈 등이 교체 멤버로 대기하고 있었다. 대타 기용이 예상됐지만 김경문 감독은 움직이지 않았다. 
황영묵을 그대로 밀고 나갔고, 결과는 대박을 쳤다. 키움 우완 양지율을 상대로 1~2구 연속 볼을 골라낸 황영묵은 3구째 직구가 존에 들어오자 과감하게 배트를 돌렸다. 3루 관중석으로 향하는 파울이 되긴 했지만 스윙이 날카로웠다. 4~5구 직구도 존으로 들어온 것을 황영묵이 계속 파울을 치며 타이밍을 잡아나갔다. 
좌측으로 계속 파울이 나오더니 결국 좌측으로 안타를 쳤다. 6구째 바깥쪽 낮게 들어온 직구를 밀어쳐 좌익수 오른쪽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2~3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며 6-5 재역전. 김경문 감독의 믿음에 제대로 보답한 순간이었다. 한화의 7-5 승리와 함께 황영묵의 시즌 5번째 결승타가 됐다. 
경기 후 황영묵은 7회말 타석 전 대타 교체를 생각했는지에 대해 “내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한 번 더 믿음을 주신 것 같아서 ‘내가 나가서 쳐야겠다. 믿음에 꼭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우리 팀이 이기려면 쳐야 할 것 같았다. 최대한 공격적으로 임해서 치려고 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기뻐했다. 
5월 중순부터 두 달가량 주전 2루수로 뛰었던 황영묵은 체력 안배 차원에서 최근 들어 벤치에 앉는 시간이 길었다. 그 사이 안치홍의 2루수 출장 비중이 높아졌는데 공수에서 맹활약하며 황영묵의 활용이 애매해졌다. 김경문 감독은 “영묵이가 못해서 경기에 못나가는 게 아니다. 잘하고 있는 선수이고, 기회를 줘야 한다”며 활용법을 고심하고 있었는데 8일 삼성전에서 유격수로 다시 선발 기회를 줬다. 
이날 황영묵은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지만 김 감독은 믿음을 바로 거두지 않았다. 9일 경기 전 훈련을 하면서 김 감독은 황영묵에게 “어제(8일) 오랜만에 유격수 나갔는데 재미있었어?”라고 물었다. 황영묵이 “재미있었습니다”라고 답하자 “그럼 오늘도 한 번 더 나가봐라”며 2경기 연속 선발 유격수를 알렸다. 최근 타격 침체에도 김 감독은 황영묵의 자세를 눈여겨봤고, 대타 타이밍이 됐지만 빼지 않고 밀어붙이는 뚝심을 보였다. 
한화 황영묵. 2024.08.01 / soul1014@osen.co.kr
한화 황영묵이 홈을 밟은 후 덕아웃에서 김경문 감독의 환영을 받고 있다. 2024.06.04 / rumi@osen.co.kr
그렇게 믿어준 감독도 대단하지만 그 믿음에 보답한 황영묵도 신인답지 않다. 올해 만루 상황에서 2루타 2개 포함 타율 5할7푼1리(7타수 4안타) 8타점 1볼넷으로 초강세를 보였다. 결승타도 팀 내 두 번째 많은 5개로 승부처에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 
한동안 벤치를 지키며 체력을 충전한 황영묵은 야구 보는 시야도 넓혔다. “다른 시선으로 선배님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는 황영묵은 “감독님께서 기회를 주신 만큼 보여드리고 싶은 의욕이 앞섰다. 운이 좋아 결과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만루 상황이 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주자를 진루시킬 필요 없이 내 배팅을 하면 되기 때문에 만루가 제일 편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주석과 이도윤의 2인 경쟁 체제였던 한화 유격수 자리는 황영묵의 가세로 더욱 치열해졌다. 시즌 초반 하주석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졌을 때 유격수로 나서며 1군 입지를 다진 황영묵은 “지금까지 야구하면서 유격수를 제일 오래 봤기 때문에 불편하거나 어색한 건 없다”고 자신했다. 황영묵의 믿음에 보답받은 김경문 감독도 경기 후 “황영묵이 정말 좋은 타격으로 역전타를 쳐줬다. 신인 선수가 중압감을 이겨낸 모습을 칭찬하고 싶다”며 흐뭇해했다.
한화 황영묵. 2024.05.12 / soul1014@osen.co.kr
한화 황영묵. 2024.07.18 / foto0307@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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