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경기가 끝나고 모든 선수들이 충분히 축하받은 후 말씀드리도록 하겠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안세영(22, 삼성생명)과 대한배드민턴협회의 진실공방이 장기화되는 모양새다. 귀국길에서도 말을 아낀 안세영이 올림픽이 모두 마무리된 뒤 입장을 밝히겠다고 선언했다.
안세영은 8일(이하 한국시간) 개인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시 한번 입장문을 내놨다. 그는 "안녕하세요. 안세영입니다"라고 말문을 연 뒤 "제 이야기로 많은 분들을 놀라게 해드려 마음이 매우 무겁습니다"라고 글을 시작했다.
먼저 안세영은 올림픽에 나선 다른 선수들에게 사과를 전했다. 그는 "특히 수많은 노력 끝에 올림픽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가장 죄송합니다. 저의 발언으로 인해 축하와 영광을 마음껏 누리셔야 할 순간들이 해일처럼 모든 것을 덮어버리게 됐습니다. 선수분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라며 고개 숙였다.
끝으로 안세영은 "그리고 어제 공항까지 걸음하셨던 기자분들과 제 입장을 기다리고 계신 많은 분들께도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 생각과 입장은 올림픽 경기가 끝나고 모든 선수들이 충분히 축하받은 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지금 당장은 입장을 내놓지 않겠다고 알렸다.
앞서 안세영은 지난 5일 프랑스 파리 포르트 드 라샤펠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허빙자오(중국)를 2-0(21-13 21-16)으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꿈에 그리던 올림픽 우승이 현실이 된 순간. 안세영은 그대로 코트에 쓰러져 기뻐했고, 김학균 감독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눈물을 훔쳤다.
이로써 안세영은 생애 첫 금메달을 따내면서 한국 배드민턴에 28년 만의 여자 단식 금메달을 안겼다. 한국 여자 배드민턴 선수가 올림픽 단식 결승에 오른 건 1996년 애틀랜타 대회 금메달리스트 방수현 이후 처음이다.
이제 안세영은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대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대회)'까지 한 걸음만 남겨두게 됐다.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에 이어 스스로 마지막 퍼즐이라 밝힌 올림픽까지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아직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은 없지만, 머지 않았다.
기쁨도 잠시였다. 안세영은 경기 후 협회 운영을 저격하면서 대표팀 은퇴까지 시사하는 말을 꺼냈다. 그는 "내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쉽게 나을 수 없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에 많이 실망했다"라며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하고는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안세영은 대표팀을 은퇴하겠다는 말인지 묻는 취재진의 말에 "이야기를 잘 해봐야 하겠지만, 많이 실망했다. 나중에 다시 설명할 날이 오면 좋겠다"라며 "협회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줄지 잘 모르겠다. 난 배드민턴만 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도 다 견딜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답했다.
파장은 일파만파 커졌고, 협회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러자 안세영은 6일 새벽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선수관리에 대한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떠넘기는 협회나 감독님의 기사들에 또 한번 상처를 받게 된다"라며 "누군가와 전쟁하듯 이야기 드리는 부분이 아니라 선수들의 보호에 대한 이야기 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은퇴라는 표현으로 곡해하지 말아달라"라고 심경을 전했다.
다만 안세영은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 불참하면서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내진 않았다. 지금까지는 이 선택이 안세영이 자의적으로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체육회 측은 안세영이 본인 의사로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 나서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세영 본인의 말은 달랐다. 그는 7일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타면서 "내가 기자회견을 안 나간 건 기다리라고만 하니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라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는데 나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안세영은 "한국에 가서 내 입장을 다 얘기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라고 말했다. "많은 선수가 축하받아야 할 자리인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라며 동료들을 향한 미안함도 드러냈다.
다만 안세영은 입국 현장에서도 말을 아꼈다. 7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수많은 취재진 앞에 선 그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협회와) 정말 싸우려고 하는 의도가 아니었단 것"이라며 "운동에만 전념하고 싶은 마음을 호소하고,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해해 달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안세영은 "이제 막 (한국에) 도착했는데 아직 협회랑도 이야기한 게 없다. 또 (삼성생명) 팀이랑도 상의된 게 없어서 더 자세한 건 상의한 후 말씀드리도록 하겠다"라고 다음을 기약했다.
코리안 메달리스트 기자회견 불참에 대해서도 정확히 답하지 않았다. 안세영은 "이 부분도 정말 논란이 많더라. 말을 자제하도록 하겠다. 왜냐하면 아직 아무것도 협회, 팀이랑 이야기한 것이 없다. 최대한 빨리 이야기를 해보고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즉답을 피한 뒤 빠르게 인터뷰 장소를 빠져나갔다.
협회는 공식 입장을 내면서 안세영의 주장을 반박했다. 10여장이 넘는 보도자료를 통해 쟁점 사항이던 부상 방치와 기자회견 불참 강요에 대해 정면 부인했다. 협회는 "선수 의사를 무시한 채 무리하게 국제대회에 참가시키지 않았다"라고 선을 그으며 "오히려 2023 덴마크, 프랑스오픈에 불참하는 과정에서 구비서류를 제출 한 바 있다"라고 항변했다. 인터뷰 불참도 지시한 적 없다며 상반된 주장을 내놨다.
안세영과 협회의 계속되는 진실공방. 양측의 주장이 너무나 반대되기에 한 쪽은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안세영이 올림픽이 끝난 뒤에야 추가 입장을 내놓겠다고 밝힌 만큼 대회가 마무리돼야 진실공방의 본격적인 서막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일단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문체부는 6일 공식 자료를 통해 "안세영 선수의 언론 인터뷰와 관련해 경위를 파악한다"라며 "현재 2024 파리 올림픽이 진행 중인 만큼 올림픽이 끝나는 대로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적절한 개선조치의 필요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대한체육회도 움직임에 나섰다. 대한체육회는 7일 안세영의 발언과 관련해 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알렸다. 대한체육회 법무팀장과 감사실장, 그리고 외부 감사 전문가로 구성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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