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뛰었던 한화 선수들에 대한 추억이…”
대전 중구 부사동에 위치한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홈구장 한화생명이글스파크. 지난 1964년 개장해 올해로 61년째가 된 야구장이다 보니 시설 노후화로 인한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삼성전에선 경기 시작을 앞두고 외야 관중석 지붕에 설치된 이벤트용 불기둥 오작동으로 화재가 발생, 5분간 경기 개시가 지연됐다. 이어 지난 3일 KIA전에선 2회말 한화 공격 중 정전 사태가 일어났다. 폭염으로 인한 전력 사용량 급증으로 전기 설비가 부하를 견디지 못해 조명탑, 전광판, ABS 시스템 등 구장 내 전기가 모두 끊겼다. 4분간 정전이 됐지만 전력을 다시 공급하는 데 시간이 걸려 38분간 경기가 중단됐다.
워낙 오래된 구장이라 아무리 관리를 해도 한계가 있다. 다행히 한화는 내년부터 바로 옆 부지에 지어지고 있는 신구장 베이스볼 드림파크(가칭)가 개장한다. 올해가 KBO리그 1군 마지막 시즌으로 청주 3경기(20~22일 NC전)를 제외하고 대전 홈은 16경기밖에 남지 않았다. 한화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면 몇 경기 더 추가될 수 있겠지만 정규시즌 기준으로는 이별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이범호(43) KIA 감독에게도 이 구장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이다. 지난 4일 한화전이 우천 취소되지 않았더라면 KIA가 이곳에서 치르는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에 이범호 감독도 “기분이 새롭다”며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이범호 감독에겐 20대 청춘을 바친 야구장이다. 대구고를 졸업하고 2000년 2차 1라운드 전체 8순위로 지명돼 한화 유니폼을 입었고, 그해 4월5일 이 구장에서 현대 상대로 1군 데뷔전을 가졌다. 당시에는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으로 2015년 구장 네이밍 스폰서를 통해 지금의 한화생명이글스파크가 되기 전까지는 대전구장으로 통용됐다.
이 감독은 “여기서 많이 뛰었다. 1000경기 넘게 뛰었을 텐데 (우측 외야 너머) 오른쪽 보문산을 보면서 타석에 참 많이 들어섰다. 젊을 때 여기서 뛰면서 여러 추억들이 있는데 (우측·좌측) 폴 끝에서 끝까지 왔다 갔다 러닝했던 기억이 가장 크다. 젊은 선수들끼리 정말 힘들게 훈련했던 기억이 난다”고 떠올렸다.
1년 후배 김태균과 함께 중심타선을 이끌며 골든글러브 3루수로 성장한 이 감독은 2009년까지 10년을 한화에서 뛰었다. 20대 청춘을 전부 바친 곳이다. 2010년 일본으로 진출한 뒤 2011년 국내 복귀와 동시에 KIA로 FA 이적하면서 한화를 떠났지만 여전히 이 감독에겐 특별한 곳이다.
이 감독은 “더 좋은 구장으로 가는 거니까 한화 이글스 팬분들과 선수들한테는 굉장히 좋은 일이다. 이 구장은 어떻게 변화가 될지 모르겠으나 내년부터 좋은 구장에서 좋은 선수들이 또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 구장에서 한화 팀에 엄청난 레전드들이 많이 나온 것처럼 잘됐으면 한다. 내년에는 좋은 구장에서 한화와 좋은 경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친정팀에 덕담을 건넸다. 이 감독 말대로 이 구장에서 송진우(21번), 장종훈(35번), 정민철(23번), 김태균(52번) 등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4명의 영구결번 레전드가 나왔다. 예비 영구결번 류현진의 커리어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이 감독에겐 한화 선수 시절 한국시리즈 우승을 해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움으로 남은 듯했다. 2006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삼성에 1승4패1무로 졌다. 당시 대전에서 열린 3~4차전을 2경기 연속 연장 접전 끝에 패한 게 뼈아팠다. 그 이후 한화는 아직 한국시리즈에 나가지 못했고, 2008년부터 세대 교체 실패로 오랜 암흑기에 빠졌다. 이 감독은 “여기서 준플레이오프에서는 홈런을 많이 쳤던 기억이 나는데 (우승이라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니 그런 부분이 아쉽긴 하다”고 추억을 곱씹었다. 이 감독은 2017년 KIA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43년간 프로야구 1군 구장으로서 수명이 다했지만 오랜 세월 역사와 추억을 남긴 곳이다. 이 감독은 “새로운 구장이 들어서니 좋은 감정이 더 많지만 여기서 뛰었던 한화 선수들에 대한 추억이 잊혀질 수도 있다는 게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이 흐르면 기억이 희미해지기 마련이지만 그 시대, 그 공간을 함께했던 야구팬들의 가슴속에는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게 이 감독이 경기 전 인터뷰를 마친 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로 바뀌면서 오후 4시35분 우천 취소 결정이 났다. 이날 경기는 9월 추후 일정으로 재편성된다. 1위를 질주하고 있는 KIA라 이 감독의 진짜 마지막 이곳 경기는 매직넘버를 남겨둔 시점이 될 수도 있다. 프로 선수로 첫발을 뗀 곳에서 정규리그 우승 감독으로 마지막 추억을 장식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