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컵 수집광’이라고 일컬을 만했다. 식은 죽 먹듯 우승컵을 꿀꺼덕꿀꺼덕했으니 말이다. ‘우승의 저주’에 걸려 아직 단 한 번도 달콤한 우승의 맛을 보지 못한 해리 케인(31·잉글랜드·바이에른 뮌헨) 같은 월드 스타도 있지 않은가. 그야말로 완전 딴판의 대비되는 모양새를 빚어낸 존재, 토니 크로스(34·독일)다.
지난 6월 1일(이하 현지 일자) 막을 내린 2023-2024시즌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는 크로스에게 각별했다. 눈부신 발자취를 그려 온 선수 생활의 마지막 무대에서, 크로스는 정상에 오르며 마지막 한 점을 화려하게 그려 넣었다[畵龍點睛·화룡점정]. 21세기 전 세계 최고 미드필더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는 명성에 걸맞은 최후의 금빛 결실이었다.
단순히 등정 이력에 한 걸음을 보탠 게 아니었다. 세계 축구사에 한 획을 긋는 우승 첨가였다. 국제 대회 우승 트로피 최다 획득의 신기록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그때로부터 2개월이 지나 기쁨의 농도가 다소 떨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분간 세계 최고 기록 보유자로서 영예와 영광을 누린다는 점에선, 뜻깊게 맞이할 수 있었던 우승이었다. 그래도 상당한 시일이 지난 뒤 이 기록을 집계해 발표한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가 다소 야속하게 느껴질지는 모르겠다.
마지막 무대 우승 장식 크로스, 종전 공동 기록 보유자 카푸 따돌리고 홀로 선두 나서
지난 7월 30일, IFFHS는 국제 대회 우승컵 다획득자를 집계하고 정리해 누리집에 공개했다. 그 제목은 “크로스는 국제 트로피 부문 세계 신기록 보유자로 은퇴했다(Kroos retired as new world record holder on international trophies)”였다. 덧붙여 “2014년 IFFHS 선정 세계 최고 플레이메이커상을 받은 크로스가 클럽 및 국가대표팀에서 획득한 시니어 국제 트로피 수에서, 새로운 세계 기록 보유자로서 경력을 마쳤다”라고 소개했다.
크로스가 수집한 우승컵은 모두 17개에 이르렀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을 비롯해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에 둥지를 틀고 거둬들인 트로피였다. 패권을 안은 대회도 세계 최고 무대였다.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을 필두로 명가들의 각축장인 UCL 등 뭇 스타들의 경연 마당에서 울려 퍼진 승전고였다. 주최·주관 단체별로 보면, FIFA와 UEFA 각 2개 대회였다(표 참조).
FIFA가 관장한 대회는 월드컵과 클럽 월드컵이었다. 국가 대항전인 월드컵에선, 2014 브라질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클럽 월드컵에선, 여섯 번씩이나 정상을 밟았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절대 강자인 바이에른 뮌헨에서 한 번(2012~2013시즌)과 스페인 라리가의 으뜸 명가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다섯 번(2013-2014시즌, 2015-2016~2017-2018시즌, 2021-2022시즌)을 엮어서 올린 결실이었다.
UEFA가 관장한 대회는 챔피언스리그와 슈퍼컵이었다. 역시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를 디딤돌로 한 비약이었다. 여섯 번의 UCL 등정은 바이에른 뮌헨 한 번(2012-2013시즌)과 레알 마드리드 다섯 번(2015-2016~2017-2018시즌, 2021-2022시즌, 2023-2024시즌)으로 이뤄졌다. UEFA 슈퍼컵은 네 번이었다. 바이에른 뮌헨 한 번(2012-2013시즌)과 레알 마드리드 세 번(2013-2014시즌 2016-2017시즌, 2021-2022시즌)을 묶은 수확이다.
크로스가 2023-2024시즌 UCL 우승을 더욱 의미 깊게 가슴속에 아로새긴 배경은 신기록이 탄생한 무대였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종전에 함께 나눠 가졌던 기록을 비로소 독점할 수 있었던 대회였기 때문이다. 2023-2024시즌 UCL 이전까지만 해도 크로스는 카푸(54·브라질)와 함께 국제 대회 우승 트로피 획득 기록(16개)을 공동 보유하고 있었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에 세계 축구 마당을 누빈 카푸는 브라질 국가대표팀을 비롯해 여러 클럽에서 우승컵을 모아들였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으론, 월드컵 2회(1994 미국, 2002 한국-일본)를 필두로 CONMEBOL(남미축구연맹) 코파 아메리카 2회(1997 볼리비아, 1999 파라과이)와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1회(1997 사우디아라비아) 등 5회 등정의 기쁨을 누렸다. 클럽으론, 상파울루(브라질·7회)와 레알 사라고사(스페인·1회)와 AC 밀란(이탈리아·3회) 등에서 11회 우승의 환호를 올렸다. 이 가운데 대표적 무대는 CONMEBOL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상파울루) 2회(1992, 1993년), UCL(AC 밀란) 1회(2006-2007시즌), 클럽 월드컵(AC 밀란) 1회(2007년) 등이다.
한편 크로스와 마찬가지로, 2023-2024시즌을 뜻깊게 보낸 인물이 있다. 크로스와 한솥밥을 먹었고 지금도 레알 마드리드 풀백 라인의 중추인 다니 카르바할(32)이다. 잇달아 열리며 2023-2024시즌 대미를 장식한 UCL과 UEFA 유로에서, 카르바할은 스페인 국가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에 한몫을 거들며 무서운 잠재력을 지닌 신기록 후보자로 떠올랐다. 단숨에 두 번의 우승을 보태 크로스의 뒤를 한 걸음 차로 바짝 뒤쫓고 있다. 16회로, 카푸와 함께 공동 2위에 자리했다.
이에 따라 크로스가 언제까지 기록 보유의 주인공으로 각광받을지가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크로스가 선수 생활을 접은 데 반해, 카르바할은 당금 세계 최고 풀백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현역 생활을 이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