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경기. 일본인 좌완 투수 기쿠치 유세이(33)가 울컥했다.
기쿠치는 지난 27일(이하 한국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 로저스센터에서 열린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홈경기에 선발등판, 4⅔이닝 8피안타(1피홈런) 2볼넷 5탈삼진 5실점을 기록했다. 4-5로 뒤진 상황에서 내려갔지만 토론토가 6-5 역전승을 하면서 기쿠치는 승패 없이 물러났다.
4-3으로 앞선 5회초 선발승 요건이 걸린 이닝을 마무리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아돌리스 가르시아에게 역전 투런 홈런을 맞은 뒤 나다니엘 로우를 헛스윙 삼진 잡은 기쿠치는 투구수 96개에서 교체됐다. 존 슈나이더 토론토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와 기쿠치에게 공을 넘겨받았다.
기쿠치는 마운드를 내려가면서 감정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5회를 못 마쳐서가 아니었다. 어쩌면 토론토에서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등판이었고, 토론토 홈 관중들의 기립 박수에 모자를 벗어 화답하기도 했다.
47승56패(승률 .456)로 아메리칸리그(AL) 5위 꼴찌로 처진 토론토는 와일드카드도 3위 캔자스시티 로열스(57승47패 승률 .548)에 9.5경기 뒤져있어 가을야구가 어려워졌다. 31일 트레이드 마감시한을 앞두고 ‘셀러’로 주축 선수들을 판매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올 시즌을 끝으로 FA가 되는 좌완 선발 기쿠치도 그 대상이다.
지난 2022년 3월 토론토와 3년 3600만 달러 FA 계약을 체결한 기쿠치는 첫 해 32경기(20선발·100⅔이닝) 6승7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5.19 탈삼진 124개로 부진했다.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94.9마일(152.7km)로 빨랐지만 9이닝당 볼넷 5.2개로 제구가 되지 않았고, 후반기에는 불펜으로 보직이 바뀌었다.
실패한 FA 계약이 되는 줄 알았지만 지난해 반전이 일어났다. 투구폼 교정을 통해 멈춤 동작을 없앤 뒤 제구가 안정됐다. 9이닝당 볼넷이 2.6개로 줄였고, 커브 구사 비율을 높이며 투구 레퍼토리도 변화를 줬다. 그 결과 지난해 32경기(167⅔이닝) 11승6패 평균자책점 3.86 탈삼진 181개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며 반등했다.
올해는 22경기(115⅔이닝) 4승9패 평균자책점 4.75 탈삼진 130개로 좋은 성적은 아니다. 시즌 첫 10경기에서 2점대(2.64) 평균자책점으로 호투했지만 승운이 따르지 않았고, 이후 12경기 평균자책점 6.87로 고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평균 시속 95.6마일(153.9km) 포심 패스트볼을 뿌리는 좌완 선발로서 트레이드 가치가 충분히 높다.
계약 기간 내내 부상 없이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던진 내구성도 증명됐다. 트레이드 마감시한 전 마지막 등판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토론토 팬들도 기쿠치의 꾸준함과 기여도를 인정했고, 기립 박수로 고별 인사를 건넸다.
‘MLB.com’을 비롯해 현지 언론에 따르면 경기 후 기쿠치는 “5점을 내줬지만 팬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정말 멋진 순간이었다. 덕아웃에 들어간 뒤에도 슈나이더 감독부터 피트 워커 투수코치와 다른 코치들, 동료 선수들이 감사 인사를 했다. 그 순간 지난 3년이 생각나면서 약간 감정이 북받쳤다”고 말했다.
로스 앳킨스 토론토 단장은 최근 기쿠치를 만나 “트레이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미리 귀띔해줬다. 언론을 통해 알게 되는 것과 구단이 미리 언질을 주는 것은 선수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 기쿠치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좋은 대화를 나눴고, 내게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그런 대화를 나눠 좋았다”며 배려해준 구단에 고마움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