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쉬게 해주고 싶은데…”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를 1위로 이끌고 있는 이범호 감독은 시즌 초반부터 선수들의 체력 관리를 입버릇처럼 말했다. 투수와 야수 가리지 않고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끔 적절하게 휴식을 주며 운영하고 있다. 베테랑 선발 양현종이 지난달 중순부터 2주 휴식을 가졌고, 대체 불가 전력인 3루수 김도영도 지난 21일 대전 한화전 선발 제외로 체력을 안배했다.
그런 이범호 감독이 유일하게 휴식을 주지 않은 선수가 1선발로 활약 중인 외국인 투수 제임스 네일(31)이다. 올 시즌 로테이션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20경기에 선발등판한 네일은 118⅔이닝을 소화하며 9승2패 평균자책점 2.88 탈삼진 115개로 기록 중이다. 평균자책점·탈삼진 2위, 다승 공동 2위, 이닝 3위로 리그 정상급 성적을 내고 있다.
시즌 첫 12경기(73이닝) 7승1패 평균자책점 1.48로 압도적인 투구를 한 네일은 그러나 이후 8경기(45⅔이닝) 2승1패 평균자책점 5.12로 페이스가 한풀 꺾였다. 주무기 투심 패스트볼과 스위퍼가 상대 타자들에게 익숙해진 것도 있겠지만 체력 저하로 구위가 떨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네일을 영입할 당시에도 이런 부분이 어느 정도 예측됐다. 지난 2019년 마이너리그 시절이 마지막 풀타임 선발 시즌으로, 한국에 오기 전 3년간 불펜으로 짧게 던졌다. 100이닝 이상 시즌이 5년 만이라 체력적으로 지칠 타이밍이 되긴 했다.
이를 인지하고 있는 이범호 감독은 네일에 대해 “110이닝 넘게 던져서 한 번 쉬게 해주고 싶다. 어떤 상황에 휴식을 줘야 할지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데 어렵다. (계획대로) 완벽하게 되지 않는다”며 그동안 팀 사정상 네일에게 휴식을 주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KIA는 윌 크로우와 이의리가 5월에 나란히 팔꿈치 토미 존 수술로 시즌 아웃되면서 선발진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체 투수로 캠 알드레드를 영입하고, 불펜에 있던 황동하가 선발진에 들어왔지만 지난주 윤영철이 척추 피로골절로 이탈하면서 또 다시 비상이 걸렸다.
김도현이 지난 19일 대전 한화전에 시즌 첫 선발로 나서 5이닝 1실점(비자책) 호투로 승리하며 급한 불을 껐지만 앞으로 1~2경기는 더 투구수를 늘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네일을 쉽게 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이범호 감독은 엔트리에서 제외하는 게 아니라 하루이틀 추가 휴식을 주는 방법도 고민 중이다.
하지만 정작 네일은 체력적인 문제를 느끼지 않고 있다. 지난 20일 대전 한화전에서 6이닝 6피안타(1피홈런) 1볼넷 1사구 5탈삼진 1실점으로 승리하며 5경기 만에 퀄리티 스타트에 성공한 네일은 “아직 휴식은 정해진 게 없고, 논의하는 과정인데 휴식을 갖는 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 확실하지 않다. 더운 여름이지만 체력적인 부분은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했다.
선수 보호와 관리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요즘에는 선발투수들이 한 번씩 엔트리에 빠져 로테이션을 건너뛰는 게 낯설지 않다. 내구성이나 체력 이슈가 있는 외국인 투수들도 관리 대상에 포함된다. 선수 쪽에서 먼저 요청하는 경우도 있는데 지난 5월 KT 웨스 벤자민이 3주 휴식기를 갖기도 했다.
144경기 긴 시즌을 치르다 보니 선발투수의 휴식차 엔트리 제외는 필수처럼 여겨진다. 최상의 퍼포먼스를 위해 적절한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지만 네일의 생각은 다르다. 시즌 내내 선발진에 변수가 끊이지 않고 있는 KIA에서 네일의 이런 우직함과 루틴 고수는 매우 큰 힘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범호 감독은 계속 네일의 상태를 체크 중이다. 이 감독은 “지금은 본인이 괜찮다고 하지만 힘들다고 표현하면 언제든 휴식을 주겠다고 했다. 한 번 빼주려고 하는데 아직 힘든 표시를 하지 않는다”며 “선수와 트레이닝 파트 의견을 존중해서 휴식 날짜를 잡아보려 한다. 다음 등판이 날씨가 안 더운 고척(26일 키움전)이다. 고척 경기까지 던져본 뒤 어떻게 할지 판단하기로 했다.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빼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