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의 세계에서는 결국 금액이 그 선수의 가치를 표현한다. 다만 유망주들에게 투자하는 계약금 등의 금액은 미래에 성공할 것이라는 예상에 매몰비용이 될 수 있다는 것까지 감수를 하고 투자하는 비용이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내야수 나승엽(22)은 지난 2021년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로 지명이 됐다. 하지만 당시 나승엽은 미국 빅리그 진출이 유력했던 상황이었고 실제로 미네소타 트윈스와 가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롯데는 2라운드 지명권 한 장을 날릴 각오를 하고 나승엽을 지명했고 롯데는 설득에 성공했다. 나승엽은 미국행 티켓을 접어 버렸다. 그리고 롯데는 2라운드 선수로는 유례없이 5억원이라는 금액을 투자했다.
데뷔 시즌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특급 루키라는 기대에 걸맞지 않게, 프로의 벽에 가로 막혔다. 하지만 2022시즌 도중 국군체육부대(상무) 입대를 결정했고 지난해 전역했다.
예비역 1년차에 본격적인 풀타임 시즌. 김태형 감독은 나승엽을 보자 수비 포지션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지만 190cm의 장신에 어울리는 1루수에 정착 시켰다. 아직 정상급 1루 수비라고 할 수 없지만 이제 풀타임 경험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타격은 확실히 남다른 선수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상무에서 8kg 가량 증량해서 돌아왔고 타구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선구안과 배트 컨트롤 능력을 갖췄지만 파워가 아쉬웠던 나승엽에게 힘이 생기자 타구의 질 자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재능에 피지컬이 갖춰지니 나승엽은 잠재력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시즌 초반 슬럼프로 한 달 가량 2군에서 재조정 기간을 거치고 돌아오자 나승엽은 생산력이 뛰어난 1루수로 자리를 잡았다. 올해 68경기 타율 3할6리(229타수 70안타) 3홈런 33타점 OPS .863의 성적을 남기고 있다. 한 달 가량의 시즌을 날렸음에도 나승엽은 2루타 21개로 리그 공동 8위에 올라 있다. 중장거리 타자의 길을 밟아가고 있다.
2루타 숫자에 비해 홈런 수치는 다소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무리하게 장타를 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장타 포텐도 서서히 터지는 분위기다. 지난 20~21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이틀 연속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20일 경기에서는 1회 2사 1,2루에서 원태인을 상대로 우월 스리런 홈런을 터뜨렸다. 시즌 두 번째 홈런. 비거리 120m. 21일에는 1-1로 맞선 4회 무사 1루에서 좌완 이승현을 두들겨 우중간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비거리 120m.
타자 친화적이고 좌우중간이 짧은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에서의 홈런이지만 비거리로 보면 어떤 구장에서나 홈런이 될 수 있었던 타구였다. 나승엽도 홈런을 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한 경기들이었다.
나승엽이 중장거리 타자로 확실하게 노선을 정하면서 생산력이 뛰어난 1루수로 자리잡고 있다. 1루수로 분류된 국내 선수들 가운데 최정상급 생산력이다. 270타석 이상 소화한 1루수 선수들 가운데 OPS를 줄세울 경우 외국인 타자 이후 나승엽이 위치한다. 홈런 1위 NC 맷 데이비슨(.931), LG 오스틴 딘(.913) 그 다음 순위가 나승엽이다. 1루와 외야를 오가는 한화 김태연(.890) 정도를 제외하고는 나승엽의 생산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예비역 1년차에 확실한 노선을 정하고 성장하고 있다. 타고난 재능에 걸맞게 성장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롯데가 투자한 5억의 가치는 점점 상승하고 있다. 적어도 투자만 하고 성적으로 회수를 못하는 매몰비용이 될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