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가수 장윤정을 비롯해 설운도, 나태주 등 오랜 투병 끝에 별세한 고(故) 현철을 향한 트로트 후배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장윤정은 17일 “정말.. 정말.. 또.. 다시.. 정말 감사했습니다 항상 격려 해 주신 덕분에 힘 냈습니다. 비가 많이 옵니다. 빗길 조심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잊지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와 함께 장윤정은 과거 현철과 함께 나란히 서서 노래를 부른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이에 프로듀서 알고보니 혼수상태는 “애기때부터 가요무대에 늘 함께하신 샘인데, 넘 슬픕니다 샘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뮤지컬 배우 김소현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애도했다.
설운도는 지난 16일 방송된 MBC 라디오 표준FM ‘손태진의 트로트 라디오’에 출연해 “가슴 아프다. 다른 건 몰라도 언젠가 우리가 다 떠나야 한다는 아픔을 피할 수 없다는 게 가슴이 아프더라. 나도 어제 밤에 황당하게 비보를 듣고 잠이 안 오더라. 형님과 나는 가요생활 하면서도 동향이라서 그런지 여러 가지 깊은 얘기도 했고, 서로 형수님과도 친하게 지내다 보니까 멘붕이 왔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형님이 애착이 많다.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게 아니라 오랜 고난과 역경을 겪고 툭툭 털고 일어나서 가요계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지금 나이가 있으니까 아프겠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깜짝 놀랐다”고 했다.
고 현철에 대해 “어떻게 보면 존경하는 선배다. 부유한 형편에서 스타가 된 게 아니라 어려움을 겪고 스타가 된 거라 그런 면에서 존경한다. 굉장히 알뜰하기도 하다. 한때 풍미하신 분인데 특히 선배님 노래는 대포집에서 젓가락 장단 맞추며 편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어디 가서 만나면 가수보다는 옆집 아저씨 같았다. 항상 옷도 편하게 입고 격식이 없는 분이셨다. 잘 사시다 가신 분이다. 그분은 가고 없어도 그분의 노래와 발자취는 영원히 가요사에 남는다”고 했다.
지난 16일 나태주는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편안히 쉬십시요. 현철 선생님”이라고, 작곡가 박현진 아들인 트로트 가수 박구윤은 “저희 아버지께 늘 하시던 말씀이 ‘구윤이 내... 주라 내가 키울께’ 늘 그렇게 저를 예뻐하시고 업고 키워주신 가요계의 큰 별 현철 큰 아버지께서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오랜 시간 투병 끝에 작고하셨기에 많이 힘드셨을거라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큰 아버지 가시는 길 다 같이 기도해 주세요.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어 17일에는 “하늘이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퍼붓네. 가시는 길 하늘도 많이 슬픈가 봐.. 빗길 조심하세요”라고 가슴 아픈 마음을 내비쳤다.
한편 고 현철은 지난 15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고인의 빈소는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졌다.
고인은 1942년생으로 1969년 27세의 나이에 ‘무정한 그대’로 데뷔했다. 당시 나훈아, 남진이 인기를 끌었지만 현철은 무명생활을 했다. 긴 무명생활 끝에 1983년 솔로로 전향, 1980년대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사랑은 나비인가봐’ 등으로 사랑받기 시작했고, 특히 1988년 발표한 ‘봉선화 연정’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1988년부터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와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리기도.
2010년대 후반까지 신곡을 내며 활발한 활동을 했으나 2018년 KBS 1TV ‘가요무대’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가요무대’ 출연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현철 측에 따르면 고인의 장례는 첫 대한민국가수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오는 18일 오전 7시 30분 영결식 후 발인식이 엄수된다. /kangsj@osen.co.kr
[사진] OSEN DB, 장윤정, 박구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