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공격형 유격수로 각광을 받았지만 언제부턴가 유격수 불가 판정을 받았고 방출되기까지 했다. 2021시즌까지 박승욱(32)이 그랬다. 하지만 지금의 박승욱은 다르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주전 유격수가 됐다. 방출생 신분에서 이제는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끈 김태형 감독의 남자가 됐다. 역경의 시간을 보내며 ‘잘 잊는 법’을 알았다.
우승팀을 이끌었던 김태형 감독의 눈높이는 높고 요구하는 역할은 많다. 특히 수비에 대한 기준치가 높은 편이다. 롯데 감독 1년차 시즌, 아직 김태형 감독은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지 않다. 김태형 감독은 “센터라인이 약하다”라면서도 “지금 우리 팀 내야가 굉장히 좋아졌고 잘하고 있다. 실책이야 나올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승욱은 김태형 감독이 가장 믿는 내야수 중 한 명이다. 올 시즌 롯데에서 한 번도 2군에 내려가지 않은 ‘유이한’ 국내 야수다. 외야수 윤동희와 함께 개막 이후 줄곧 1군에 머물고 있다. 2루와 유격수 3루수를 오가는 전천후 내야수로 활약하다가 최근에는 주전 유격수로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박승욱은 올 시즌 84경기 타율 2할6푼4리(231타수 61안타) 4홈런 30타점 OPS .714의 성적을 남기고 있다. FA로 영입된 노진혁, 트레이드로 합류한 이학주 등을 제치고 방출생 출신 선수가 어느덧 롯데의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차고 있다.
지난 16일 울산 문수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박승욱은 김태형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는 활약을 펼쳤다. 선발 찰리 반즈의 7이닝 1피안타 1볼넷 9탈삼진 무실점 완벽투에 박승욱이 승리를 안기는 결승 타점을 기록했다.
전준우와 정훈의 볼넷으로 만들어진 7회 1사 1,2루 기회에서 좌완 이병헌을 상대로 3루수 키를 넘기는 좌선상 적시 2루타를 뽑아냈다. 롯데는 1-0의 리드를 잡았고 이후 대타 최항의 2타점 적시타를 묶어서 3-0으로 주도권을 완전히 휘어잡았다.
수비에서도 4회 2사 후 양의지의 3-유간의 깊은 타구를 부지런히 쫓아가서 건져낸 뒤 1루에 정확한 원바운드 송구로 아웃을 잡아냈다. 경기 후 만난 박승욱은 “반즈 선수가 너무 잘 던져줬는데 타자들이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야수들끼리 어떻게든 일단 선취점을 내자고 의지를 다졌는데, (전)준우 형, (정)훈이 형이 출루를 해줘서 집중력을 높일 수 있었다”라며 “앞선 두 타석에서 타이밍이 늦었기 때문에 타이밍을 간결하게 빨리 잡자고 생각해서 좋은 타구가 나왔다. 좌타자가 치기 까다로운 이병헌 선수였는데 실투가 나왔고 실투를 놓치지 않았던 게 좋은 타구가 나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실 박승욱은 최근 아쉬움이 짙은 경기들을 펼쳤다. 타격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지만 수비에서 실책이 연거푸 나왔고 이 실책들이 승부를 기울게 하는 클러치 실책들이었다. 12일 사직 KT전 9회, 도루를 저지하기 위한 포수 손성빈의 송구를 놓쳤고 곧바로 배정대의 정면 타구를 빠뜨렸다. 결정적 실책 2개로 팀을 패배로 인도했다.그는 “이겼으면 다 좋게 마무리 됐을텐데 많이 아쉬웠다. 마음의 짐도 그 당시에 있었고 나 자신에게 데미지도 있었다. 투수들에게 미안하고 동료들에게 많이 미안했다”라고 되돌아봤다.
그럼에도 박승욱은 그 실책에 파묻히지 않았다. 실책의 악몽에서 허덕이지 않고 빠르게 헤쳐나왔다. 박승욱은 역경을 거듭하면서 어떻게 잘 잊을 수 있는지 방법을 깨달았다. 그는 “다음 경기가 있고 또 다음에 이기면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준비했다. 실수했던 것에 파묻히지 않고 그 다음에 야구장에서 제가 할 것들을 하다보면 그게 잊혀지더라. 경기 전까지 제 루틴대로 준비하다 보면 거기에 맞춰서 컨디션이 올라온다”라고 말했다.
김태형 감독이 꾸준히 주전으로 내보내면서 박승욱도 빠르게 회복될 수 있었다. 그는 “백업으로 나가면 딱 한 번의 기회 뿐이다. 하지만 선발로 나가다 보면 3~4번 기회가 더 있기 때문에 그게 차이”라면서 “감독님께 정말 감하다. 보답이라기 보다는 실망시켜드리지 않게 하기 위해 제 나름대로 준비를 더 착실하게 하는 것 같고 더 집중해서 플레이 하려고 한다”라고 강조했다.
잘 잊는 법을 확실하게 깨달은 박승욱. 그의 야구 인생은 과연 어디까지 펼쳐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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