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그런 악착 같은 게 필요하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외야수 이상혁(23)은 세계적인 스타인 프로게이머 ‘페이커(Faker)’와 이름이 같다. 선수들에게서 ‘페이커’로 불리는 이상혁이 데뷔 첫 안타로 김경문 감독에게도 자신의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다.
이상혁은 지난 13일 대전 LG전에서 프로 데뷔 첫 안타를 신고했다. 한화가 2-7로 5점 뒤진 9회말 선두타자 이도윤 타석에 대타로 나온 이상혁은 LG 마무리투수 유영찬에게 내야 땅볼을 쳤다. 빗맞은 타구가 투수 오른쪽으로 느리게 굴러갔다. 유영찬이 잡지 못한 타구를 2루수 신민재가 글러브 끝으로 토스했지만 1루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들어간 이상혁이 조금 더 빨랐다.
5점차로 뒤진 9회말. 승부가 기운 상황에서 나온 내야 안타였지만 이상혁에겐 그토록 기다려온 프로 데뷔 첫 안타의 순간이었다. 장안고-강릉영동대 출신 이상혁은 2022년 육성선수로 한화에 입단했다. 174cm 65kg 작은 체구에도 빠른 발과 센스를 인정받아 첫 해 육성 신인 신분에도 이례적으로 1군 스프링캠프에 합류했다. 당시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이상혁의 가능성을 주목하며 1대1 수비 지도를 하기도 했다.
원래 포지션은 내야수였지만 2년 차가 된 지난해부터 빠른 발을 살리기 위해 시즌 중 외야수로 옮겼다. 1군에서 7경기를 짧게 경험하며 데뷔 첫 도루도 기록했다. 올해는 1군에서 13경기로 출장 기회를 조금 늘리며 도루 2개에 6득점으로 대주자 임무를 수행 중이다. 발 빠른 선수를 선호하는 김경문 감독이 온 뒤 출장 기회가 늘었다. 이달에만 8경기를 교체로 투입돼 5득점을 올리며 대주자로서 역할을 잘해내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2타석씩 들어선 게 전부였지만 13일 LG전에 대타로 나서 몸을 내던진 내야 안타로 첫 안타를 신고했다. 이튿날 김경문 감독은 “그런 안타가 상대 투수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이다. 한화는 그런 악착 같은 게 필요하다. 너무 순한 야구만 해선 안 된다. 나도 순한 성격이지만 경기 때는 자기 안에 있는 걸 드러내 승부욕도 발휘할 필요가 있다”며 “첫 안타인 줄은 몰랐다. 굉장히 박수를 보냈다. 앞으로 타격 기회도 좀 더 줄 것이다”고 밝혔다.
김경문 감독이 보는 앞에서 첫 타석이라 이상혁에겐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 그는 “타석에 들어가기 전 긴장을 많이 했는데 (땅볼 타구에) 투수가 못 잡는 걸 보고 더 열심히 뛰었다. 원래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안 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나왔다. 첫 안타라서 기분이 좋았다”고 돌아봤다.
대주자로 조금씩 비중을 늘려가는 중인 이상혁은 “처음에는 긴장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거의 매 경기 한 번씩 주루 플레이를 하고 있다. 내 장점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아 좋다. 감독님이 발 빠른 선수를 좋아하시는 만큼 더 간절하게, 야구장에서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첫 번째”라고 말했다.
이원석과 함께 팀 내 최고 주력을 자랑하는 이상혁은 대주자로서 타구 및 상황 판단 능력이 뛰어나다. 그는 “경기 전 코치님들과 함께 아웃카운트나 주자 상황별로 연습한다. 코치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타구가 맞는 순간이나 상황을 보고 바로 판단할 수 있다”고 공을 돌렸다.
대주자로 주목받고 있지만 올해 퓨처스리그에선 타율 3할4리(69타수 21안타)를 쳤다. 볼넷 13개를 골라내 출루율도 4할대(.415)로 타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힘이 없다 보니 타격 연습을 많이 했다. 조금 더 간결하게 치면서 뜬공보다 땅볼 위주로 만들고 있다. 발이 빠르기 때문에 1루에서 살 수 있는 스타일로 연습하면서 번트도 많이 댔다”고 말했다.
김경문 감독이 조금 더 많은 타석 약속했지만 이상혁은 본연의 임무를 잊지 않는다. 그는 “야구장에서 타격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걸 제일 먼저 해야 한다.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한 타석, 한 타석 간절하게 소중히 생각하겠다”면서도 “주자로서 먼저 완벽하게 해야 한다. 그 다음은 수비다. 외야수로서 경험이 많지 않지만 김강민 선배님이나 (장)진혁이형이 많이 알려줘 도움을 받고 있다. 시즌 끝날 때까지 1군에 계속 버티는 게 목표”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