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LG 트윈스 중견수 박해민(34)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철인’이다. 삼성 소속이었던 지난 2021년 10월13일 광주 KIA전부터 14일 대전 한화전까지 최근 393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현역 선수로는 최다 연속 출장. FA 이적한 뒤 2년 연속 전경기 출장 포함 LG에서 380경기를 개근 중이기도 하다. 튼튼함 몸과 자기 관리, 무엇보다 실력이 전제돼야 가능한 기록이다.
그러나 6월말부터 시작된 타격 부진이 길어지자 박해민의 실력이 조금씩 의심받기 시작했다. 지난 3일 고척 키움전부터 11일 잠실 KIA전까지 5경기 18타수 연속 무안타로 극도의 부진을 보였고, 덕아웃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방망이가 너무 안 맞을 때는 잠시 쉬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염경엽 LG 감독은 김현수에게 지난 11~12일 이틀간 휴식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박해민은 빼지 않았다. 중견수 수비가 대체 불가 수준이기 때문에 뺄 수 없었다. 대신 염경엽 감독은 지난 12일 대전으로 이동한 뒤 박해민과 면담 시간을 가졌다. 염 감독과 박해민 그리고 모창민 타격코치까지 셋이서 1시간가량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염 감독은 박해민에게 좌절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절대 헤어날 수 없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본인도 얼마나 잘하고 싶겠나. 타격과 함께 멘탈에 대한 부분을 얘기했다. 자기 것을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박해민 같은 선수는 그걸 빨리 이해한다”며 면담을 통해 빠르게 자기 것을 찾을 것으로 봤다.
염 감독의 말이 맞았다. 1시간 면담 이후 치른 12~14일 대전 한화전에서 박해민은 3경기 연속 안타로 살아났다. 첫째 날부터 2안타 멀티 히트를 치더니 둘째 날에는 홈런을 쳤다. 마지막 날인 14일에는 1안타 2볼넷 3출루 활약을 했다. 특히 1-2로 뒤진 7회 좌전 안타를 치고 나간 뒤 무사 1루에서 기습적인 도루에 성공하며 경기 흐름을 바꿨다.
신민재가 보내기 번트를 시도하면서 한화 내야 전체가 움직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투수 라이언 와이스가 포수에게 공을 넘겨받는 사이 휠플레이로 움직인 한화 내야수들이 각자 위치로 돌아갔다. 이때 유격수 이도윤이 2루를 등지고 베이스에서 멀어진 사이 박해민이 2루로 뛴 것이다. 이에 깜짝 놀란 와이스가 2루로 던지려고 했지만 베이스가 비어 던질 수 없었다. 찰나의 틈을 파고든 박해민의 센스와 집중력이 빛났다. 이후 LG는 홍창기의 동점 적시타를 시작으로 4득점 빅이닝을 만들며 8-4로 재역전승했다.
경기 후 박해민은 “예전에도 한 번 그렇게 한 적이 있다. 타자가 번트를 대면 내야수들이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는데 유격수가 2루를 커버한 뒤 (원래 수비 위치로) 돌아갈 때 주자를 안 보는 경우가 있다. (이도윤이) 베이스에서 멀어지길래 2루에서 승부가 될 것 같아 과감하게 시도했는데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3연전 내내 타격이 살아나며 마음이 가벼워진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박해민은 “밀어서 치는 안타가 나오는 게 고무적이다. 난 정확성을 높여야 하는 타자인데 잡아채는 스윙을 하다 보니 1루 쪽 파울이 많이 나왔다. 결과가 안 나오다 보니 마음이 급해져 앞쪽으로 중심이 쏠렸다. 이번 시리즈에는 아예 중심을 뒤쪽에 놓으면서 쳤고, 좌측으로 타구가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점이 긍정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염경엽 감독과의 면담도 전환점이 됐다. 그는 “감독님도 오죽 답답하셨으면 그렇게 하셨겠나. 1시간 동안 모든 내용을 다 들었다고 할 수 없지만 1루 쪽 파울이 나는 것에 대해 귀담아 들었다. 연습 때부터 감독님이 말씀하신 걸 생각하면서 하다 보니 좌측으로 타구가 갔다. 이제는 내 야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며 “감독님께서 나와 (오)지환이, (김)현수형이 살아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3명 다 살아나면서 팀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극심한 타격 슬럼프 속에서도 박해민은 꾸준히 계속 경기에 나갔다. 너무 안 될 때는 선수가 먼저 휴식을 요청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지만 박해민은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감독님이 경기에 내보내주시면 몸이 되는 한 나가야 한다. 실력이 안 돼서 못 나가면 어쩔 수 없다. 전반기에는 내 실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하는데 감독님께서 믿고 계속 내보내주신 덕분에 이렇게 살아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고마워했다.
타격은 기복이 있지만 수비와 주루는 슬럼프가 없다. 염 감독이 박해민을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는 이유다. 박해민은 “수비 못하면 야구 그만해야 하는 시기다. 공격이 안 되면 수비나 주루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타석에서 결과가 더 나야 감독님도 기용하시는 데 있어 조금 더 편하게 하실 수 있다. 어쨌든 타격이 더 올라와야 한다”는 말로 확실한 타격 반등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