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메시(37·아르헨티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9·포르투갈), 두 월드 스타는 ‘신이라 불린 사나이’였다. 금세기 초반부 전 세계 ‘축구 천하’를 호령하며 역사에 길이 남을 발자취를 깊숙이 아로새겨 왔다.
지구촌 모든 축구 애호가에게 회자하며 시선을 사로잡았던 두 거인의 ‘기록 행보’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듯했다. 적어도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 2024(6월 14일~7월 14일: 이하 현지 일자)와 CONMEBOL 코파 아메리카 2024(6월 20일~7월 14일)가 막을 올리기 전까지는 그런 모양새였다.
메시와 호날두는 두 대회를 각각 자신의 역사적 발걸음을 내딛는 지경으로 삼았을 정도였다. “유로에 호날두가 있다면, 코파 아메리카엔 메시가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참’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만큼 메시와 호날두는 각각 코파 아메리카와 유로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을 바탕으로 한 두 거물의 자존심 각축은 세계 축구 기록사를 관심의 장으로 만들었을뿐더러 더욱 윤택하게 했다.
월드컵에 버금가는 열기를 내뿜으며 펼쳐지던 유로 2024와 코파 아메리카 2024도 이제 막을 내리려 한다. 독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로 2024는 잉글랜드-스페인의, 미국에서 진행 중인 코파 아메리카는 아르헨티나-콜롬비아의 각각 마지막 자웅을 겨룰 결승 한판만을 남기고 있다.
이와 함께 메시와 호날두의 명암이 엇갈린 걸음새가 눈길을 끌며 묘한 감정을 자아낸다. 메시는 조국 아르헨티나를 이끌고 패권을 다툴 최후의 결전장으로 나아갔다. 반면, 고국 포르투갈의 공격 핵으로 앞장섰던 호날두는 8강 프랑스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분루를 삼키며(3-5) 물러섰다. 희비쌍곡선이 그려진 두 ‘축구 대가’의 운명을 엿볼 수 있었던 코파 아메리카 2024와 유로 2024였다.
메시와 호날두의 걸음걸음을 한결 빛나게 했던 기록 측면, 그중에서도 득점에 초점을 맞추면 더욱더 명암의 교차가 확연하게 느껴진다. 희비쌍곡선을 빚어낸 운명의 숫자는 ‘6’이었다. 코파 아메리카 마당에서, 메시는 최다 대회 득점 경지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번 대회를 여섯 번째 코파 아메리카 득점 기록으로 수놓았다. 호날두는 그렇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 끝내 상대 골문을 열어젖히지 못했다. 그와 함께 이어져 오던 유로 득점 명맥은 5에서 끊겼다.
메시, 코파 아메리카 최다 대회 득점 타이… 호날두, ‘5’에서 골 명맥 단절
마침내, 메시가 코파 아메리카 최다 대회 득점 기록부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지난 9일(한국 시각 10일)에 캐나다와 치른 준결승전(2-0 승)에서, 추가골(후반 6분)을 터뜨리며 또 하나의 과실을 맺었다. 코파 아메리카 역대 다대회 득점부의 맨 윗자리 반열에 올랐다. 여섯 번째 대회다(표 참조).
코파 아메리카 무대에서, 메시는 2007 베네수엘라 대회에 첫 모습을 나타냈다. 데뷔 무대에서 2골을 뽑아내며 ‘축구 천재’의 탄생을 알렸다. 이후 열린 6개 대회에 줄곧 출전하며 총 7회의 코파 아메리카를 치른 메시는 이 가운데에서 여섯 번 대회 득점부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홈그라운드에서 열린 2011 대회에서만 골을 뽑아내지 못했다.
골맛을 본 여섯 번 대회에서, 메시는 모두 14골을 터뜨렸다. 2007 대회 2골을 시작으로, 2015 칠레(1골)→ 2016 미국(5골)→ 2019 브라질(1골)→ 2021 브라질(4골) 대회를 거쳐 이번 대회 1골 등 코파 아메리카 득점사를 점철해 왔다.
이로써 이 부문에서, 메시는 지지뉴(브라질)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공동 기록 보유자로 올라섰다. 67년 만에 이뤄진 타이 기록이다. ‘영원한 축구 황제’ 펠레가 생전에 가장 추앙했던 지지뉴는 20세기 중반에 열린 코파 아메리카 여섯 번 대회에서 골을 잡아내며 남미 최고의 골잡이로 이름을 드날렸다. 지지뉴는 1942 우루과이 대회(2골)부터 1957 페루 대회(2골)까지 총 17골을 터뜨리며 기나긴 67년 동안 홀로 기록 보유자로서 영광을 누려 왔다.
대조적으로, 호날두는 20년간 이어 오던 골 명맥이 단절됐다. 5에서 끊긴 채 역사 속에 파묻혔다. 자국에서 열린 2004 유로에서 데뷔한 이래 11개 지역에서 분산 개최된 2020 유로까지 다섯 대회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득점포를 가동해(2→ 1→ 3→ 3→ 5) 온 호날두였다. 이번 독일 대회를 끝으로 유로 무대 은퇴를 시사했던 만큼 더욱 진한 아쉬움을 곱씹을 수밖에 없이 고별을 고했다.
마지막 유로 무대인 이번 대회에서, 호날두는 ‘전매특허’라 할 만한 골 폭발을 단 한 차례도 터뜨리지 못했다. 지난 다섯 대회와 전혀 딴판의 모습이었다. 프랑스에 패퇴해 마지막 한판이 된 8강전까지 5경기를 치르며 골과 연(緣)을 맺으려 했으나, 야속하게도 상대 골문은 철저히 호날두의 손길을 외면했다. 역대 유로 최다 득점(14골) 기록을 보유한 호날두로선 자존심에 흠이 갈 만한, 자신조차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끝없는 듯싶은 골 침묵이었다.
인간은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메시와 호날두가 비록 ‘신계의 사나이’로 일컬어지긴 했어도, 어쨌든 유한한 영육의 생명체이다. 비록 노익장의 열정을 불사르고 있으나, 한 시대를 주름잡던 때의 맹위는 시나브로 사그라지고 있다. 기록의 산실이자 보고(寶庫)로서 점입가경의 기록 행진과 각축을 벌였던 양웅의 시대도 가는 세월에 쫓겨 퇴색해 간다. 호날두가 두 살이 더 많은 점은 이런 시대의 요구를 더 재촉하는 듯싶다.
코파 아메리카 2024에서, 메시는 그래도 미소를 띨 수 있었다. 반면 2024 유로에서, 호날두는 눈물을 훔쳤다. 두 대회에서 나타난, 명암이 엇갈린 두 영웅의 발걸음은 많은 생각을 안기고 느끼게 한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