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감독 놀음'이란 말이 있다. 다른 스포츠와 비교해 감독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시 되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과거 축구가 특정 몇몇 스타플레이어에 의존했다면 현대 축구는 감독의 전술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시즌 유럽 축구만 봐도 알 수 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3위 아스턴 빌라, 스페인 라리가 3위 지로나, 독일 분데스리가 무패 우승 레버쿠젠은 감독이 새롭게 가세한 후 성과를 냈다. 이는 감독이 선수보다 더 많은 비난을 듣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울산HD는 10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2024 K리그1 22라운드 광주FC와 맞대결에서 0-1로 패했다. 이로써 울산은 광주를 상대로 4연패에 빠졌다.
어떤 한 팀이 특정팀을 상대로 계속 좋지 않은 결과를 내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래서 스포츠에도 먹이사슬, 천적이 존재한다. 프로팀끼리 맞붙어 한쪽이 일방적으로 승리하거나 패배한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울산과 광주의 대결이라면 다르다.
울산은 명실공히 K리그 최고 팀이다. 국가대표급 최고의 스쿼드를 자랑한다. 벤치에도 스타들이 즐비하다. 이를 바탕으로 리그 2연패를 달성했고 이번 시즌에도 당연히 유력한 우승 후보다.
그에 반해 이정효 감독의 광주는 누추한 수준이다. 누구나 알 만한 스타도 없고 스쿼드도 얇다. 더구나 얼마 전까지 프로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훈련 환경 때문에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런 울산이 광주에 4연패를 당했다. 물론 이날 경기는 어수선한 가운데 펼쳐졌다. 지난 7일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가 홍명보 감독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내정했고 8일 선임을 확정하면서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광주를 상대로 비기지도 못하고 4번 연속 계속 졌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결국 '축구는 감독 놀음'이란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홍명보 감독은 누구나 다 아는 스타다. 선수로는 2002 한일 월드컵 4강 주역이며 A매치에만 136경기를 뛰었다. 감독으로는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으로 추락했지만 울산에서 부활했다.
그에 반해 이정효 감독은 무명이다. 부산 대우, 아이콘스, 아이파크를 거친 레전드라곤 하지만 그의 선수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은 많이 없다. 감독 경력도 아주대 감독을 거쳐 2022년부터 광주를 맡았다. 스스로 "흙수저"라며 "한 번 떨어지면 다시 기회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감독의 광주는 홍 감독의 울산과 승격한 첫 해인 작년부터다. 첫 두 번의 맞대결에서는 1-2, 0-1로 졌다. 하지만 이후 2-0, 1-0, 2-1에 이어 이날까지 4연승을 기록했다.
비슷한 스쿼드를 가지고도 특정팀에게 계속 패한다는 것은 전술 싸움에서 지고 있다는 말일 수 있다. 하물며 현대 축구에서 차이가 확연한 선수와 선수층을 보유하고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감독의 역량을 대변하는 것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울산은 인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도 최근 4경기 연속 이기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4월 25일 인천 원정에서 1-0으로 이긴 후 3무 1패다.
지난 8일 홍 감독에게 읍소한 끝에 승락을 받아냈다는 이임생 기술 이사는 여러 이유를 대면서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 했다. 그 중 "협회 철학 및 게임 모델을 고려할 때 적합했다"고 말하며 설명한 부분은 압권이었다.
이 이사는 "홍명보 감독이 울산에서 경기를 보면 빌드업 시 라볼피아나 형태와 비대칭 스리백을 사용한다. 상대 측면 뒷공간을 효율적으로 공략한다. 선수 장점을 잘 살려 어태킹 서드 라인 브레이킹, 카운터와 크로스, 측면 콤비네이션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했다.
여기에 덧붙여 "홍명보 감독의 울산은 작년 리그 1위, 빌드업 1위, 압박 강도 1위, 활동량은 10위를 기록했다. 이는 효과적으로 경기를 풀어갔다는 뜻이다.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아르헨티나 또한 당시에는 활동량은 하위권이었다"고 강조했다.
외국인 감독들과 비교해 홍명보 감독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말들이었다. 일반인이 좀처럼 알아 들을 수 없는 용어, 납득하기 힘들거나 모호한 데이터를 늘어놓기도 했다. 이런 정황한 극찬이 구차해져버린 경기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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