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보면 명장이 따로 없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한국 대표팀 감독이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감독을 향해 조언을 내놨다.
영국 '더 선'은 28일(이하 한국시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클린스만의 글을 전했다. 그는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앞으로 나서서 비난을 받았다. 존경받아 마땅하다. 잉글랜드 감독의 힘을 보여준다"라고 주장했다.
잉글랜드는 현재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24를 치르고 있다. 전력은 화려하다. '유로피언 골든슈' 해리 케인(바이에른 뮌헨)을 필두로 주드 벨링엄(레알 마드리드), 필 포든(맨체스터 시티), 데클란 라이스, 부카요 사카(이상 아스날) 등 쟁쟁한 선수들이 즐비하다. 국제 대회에서 약한 잉글랜드지만, 우승 후보로 꼽힌 이유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졸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승 2무로 조 1위를 기록하긴 했으나 3경기에서 두 골에 그쳤다. 경기력 자체가 형편없었다. 압박도 부족했고, 공격 전개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사우스게이트 감독도 덴마크전을 마친 뒤 "분명 우리가 기대했던 경기력은 아니었다. 우린 공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더 나은 수준이 돼야 한다"라며 "이번 두 경기에서 우린 상대에게 더 많은 압박을 가해야 했다. 현재 우리는 원하는대로 흐름을 타지 못하고 있다"라고 인정했다.
부진이 이어지자 잉글랜드 내에선 여러 말이 나왔다. 특히 풀백이 원래 포지션인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의 중원 배치, '2023-2024시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포든 기용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케인을 잘못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포든과 벨링엄의 동선 정리도 되지 않고 있다. 슬로베니아와 최종전 터치맵을 보면 둘은 아예 한 몸이 된 것처럼 구분하기도 힘들었다. 역할 분담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잉글랜드 팬들은 슬로베니아전이 0-0으로 끝난 뒤 물병을 투척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게리 리네커와 앨런 시어러, 리오 퍼디난드 등 잉글랜드 전설들도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전술을 향해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 때문에 케인이 공개적으로 비판을 멈추라고 목소리를 냈을 정도.
하지만 클린스만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을 옹호했다. 물론 전술적인 부분을 칭찬하진 않았다. 대신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맞췄다.
클린스만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비난을 감수하고 팬들과 직면하는 모습은 참 존경스러웠다. 그는 슬로베니아전 0-0 무승부 이후 곧바로 라커룸으로 향해 화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잉글랜드 국민들에게 다가갔다. 팬들이 화가 났다는 점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사우스게이트는 상황과 직면했고 응원에 감사를 표했다. 몇몇 팬들은 그에게 플라스틱 맥주잔을 던지고 욕설을 뱉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사우스게이트의 행동에 감명받았을 것"이라며 "사람이라면 모두 칭찬을 좋아한다. 우린 인간이다. 그러나 비판을 받을 순간엔 이를 견딜 수 있는 넓은 어깨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을 향한 조언도 남겼다. 클린스만은 "버스 기사부터 언론 담당자, 공격수까지 모두가 신념으로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한다"라며 "조별리그 이후 토너먼트는 재부팅의 시간이다. 새로운 대회와 같다. 잉글랜드는 긍정적인 분위기를 되찾을 수 있다"라고 덕담을 건넸다.
물론 절대로 틀린 말은 아니다. 메시지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메신저가 다른 이도 아닌 클린스만이라는 점에서 헛웃음이 나온다.
모두를 '원 팀'으로 만드는 리더십과 비판을 받아들이고 발전하는 자세는 클린스만이 한국에서 보여준 모습과 정반대되는 이야기다. 그는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선수단 관리에 실패하며 손흥민과 이강인의 충돌을 막지 못했다.
비판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사실 클린스만은 임기 내내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황금 세대를 데리고도 시원한 경기력을 보여준 적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클린스만은 언제나 비판 대신 응원을 보내달라고 호소했고, 탈락한 뒤에 욕해도 늦지 않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결국 졸전 끝에 4강 탈락한 클린스만. 그는 귀국길에서도 팬들의 분노에 어깨를 으쓱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클린스만은 경질된 뒤에도 최악이었다. 그는 자신은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고 있었지만, 손흥민과 이강인의 싸움이 모든 걸 망쳤다며 끝까지 선수 탓만 해댔다. 클린스만과 함께한 1년은 한국 축구의 지울 수 없는 흑역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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