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가 풀리지 않아 작명소까지 찾은 백업 외야수는 어떻게 KBO리그 안타 부문의 전설이 될 수 있었을까.
손아섭은 2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의 시즌 11번째 맞대결에 2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6회초 개인 통산 2505호 안타를 때려냈다.
1회초 2루수 땅볼, 3회초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난 손아섭은 0-2로 뒤진 6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세 번째 타석을 맞이했다. 두산 선발 라울 알칸타라를 만나 1B-2S 불리한 카운트에 몰렸지만, 6구째 포크볼을 공략해 좌전안타로 연결하며 최다안타 신기록을 수립했다.
손아섭은 개인 통산 2505번째 안타를 신고하며 박용택 해설위원을 제치고 KBO리그 통산 최다 안타의 새 역사를 썼다. 박용택이 2018년 6월 23일 잠실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2319번째 안타로 양준혁 해설위원을 제치고 통산 안타 신기록을 달성한지 약 6년 만에 최다 안타 1위의 주인이 바뀌었다. 데뷔 후 2044경기 만에 달성한 쾌거였다.
1988년생인 손아섭은 부산고를 나와 200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롯데 2차 4라운드 29순위로 프로에 입단했다. 입단 초반 각종 시행착오와 개명(광민→아섭)을 거친 그는 2010시즌 129안타 타율 3할6리로 알을 깨며 대형타자의 탄생을 알렸다. 손아섭은 2010시즌부터 2023시즌까지 무려 14시즌 연속 세 자릿수 안타를 쳤고, 그 가운데 총 네 차례(2012, 2013, 2017, 2023) 최다안타 타이틀을 따냈다. 지난 시즌에는 타율 3할3푼9리 맹타를 휘두르며 데뷔 17년 만에 첫 타격왕에 오르기도 했다.
손아섭은 롯데 시절이었던 2007년 4월 7일 수원 현대 유니콘스전에서 데뷔 첫 안타를 2루타로 때려냈다. 2015년 목동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1,000안타를 달성한 후, 2018년 포항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1,500안타, 2021년 대구 삼성전에서 2,000안타의 주인공이 됐다. 2,000안타 기록은 지금까지 KBO리그 역대 최연소, 최소 경기 달성 기록으로 깨지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2023시즌에는 KBO리그 역사상 첫 번째로 8시즌 연속 150안타 이상을 쳐냈다.
손아섭은 2017년 11월 원소속팀 롯데와 4년 98억 원에 생애 첫 FA 계약을 체결했다. 2021년까지 롯데에서만 2077안타를 기록한 그는 2021년 12월 NC와 4년 총액 64억 원에 2차 FA 계약을 체결하고, 이날 통산 2505호 안타를 포함해 428안타를 쳤다.
다음은 ‘최다안타 1위’ 손아섭과의 일문일답이다.
-대기록 달성 소감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정말 영광스럽다. 다만 팀도 이겼으면 기쁨이 훨씬 컸을 거 같다. 경기를 진 건 조금 아쉽다.
-신기록을 달성했을 때 기분은
실감이 안 났다. 크게 와닿지도 않았다. 그냥 멍했다. ‘이게 뭐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KBO리그 기록 부문 통산 1위가 된 소감은
내가 1위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그 동안 정말 고생 많이 하고 노력했던 시간을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은 좋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아직 야구를 할 날이 많기 때문에 끝날 때까지 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본다.
-그동안 기억에 남는 안타가 있다면
데뷔 첫 안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역전 2루타로 데뷔를 하게 됐는데 스타트를 잘 끊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꾸준하게 온 거 같다.
-첫 안타를 쳤을 당시 본인이 대기록을 달성할 거라고 예상했나
솔직히 이렇게 많은 안타를 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왔고, 그런 시간이 모여서 이렇게 대기록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됐다.
-박용택 해설위원의 “손아섭은 누구보다 매 타석을 간절하게 임한다”라는 평가에 대한 생각은
맞는 말씀이다. 솔직히 난 천재형 타자는 아니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임했다. 투수에게 어떻게든 이기고 싶어서 치열하게 했다.
-그 동안 본인에게 상당히 엄격한 선수였는데
성격 자체가 예민해서 그렇다. 또 그런 부분은 잘 안 바뀐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부분이 지금까지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바꾸려고 하기보다 지금처럼 초심 잃지 않고 계속 하고 싶다.
-박용택 위원은 손아섭이 충분히 3000안타를 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아직 수치상 너무 많이 남았다. 2500안타를 칠 거라고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이렇게 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뭔가를 의식하게 되면 타석에서 밸런스가 무너지고, 욕심을 부리면 역효과가 난다. 특정 숫자를 정해놓기보다 지금 같은 마음으로 부상 없이 뛴다면 나중에 많은 분들이 바라시는 수치가 또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냥 매 경기 모든 걸 쏟아 붓고 싶다.
-본인이 생각하는 꾸준함의 비결은
아침에 눈을 떠서 자기 전까지 일정한 루틴을 지키려고 했다. 멘탈적으로 힘든 시간이 분명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항상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똑같이 경기를 준비했다.
-어제 타이기록을 달성해서 오늘 경기 마음가짐이 조금 달랐을 거 같다
이왕이면 빨리 달성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어차피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무조건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담은 없었다.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싶나
은퇴 시기를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내가 힘이 있고 팀에 도움이 된다면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싶다. 1년에 150안타를 쳐야 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야구를 위해 절제하는 생활습관이 있다면
술, 담배를 안 한다. 탄산음료도 안 마신다. 이게 야구에 도움이 되는 건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앞에 말한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대기록을 고향 부산에서 달성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나
특정 구장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이왕이면 홈구장 또는 사직구장, 잠실구장 등 큰 구장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다. 박용택 선배님도 기록을 잠실구장에서 달성하셨다. 그 때 내가 상대팀이었다. 나와의 경기에서 기록을 세우셨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잠실구장에서 그 기록을 깼다.
-손아섭에게 야구란
올해 정말 준비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초반에 생각했던 것만큼 풀리지 않았다. 야구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또 몰랐던 부분을 많이 배운다. 타격은 신의 영역이다. 정말 어렵다.
-지금 이 자리로 오기까지 기억 나는 스승이 있다면
정말 많다. 일단 내가 많이 부족한 선수였는데 그럼에도 기회를 주신 로이스터 감독님이 생각난다. 또 김무관 타격코치님도 신인 때 내 스윙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 또 강인권 감독님께서도 부진할 때도 날 끝까지 믿어주시고 경기 내보내주셨다.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허문회 감독님 생각도 많이 난다.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야구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이다. 이렇게 네 분이 확실히 기억에 많이 남는다.
-본인의 기록을 위협할 만한 후배를 꼽자면
원래는 당연히 이정후였는데 미국을 갔다. 다음 후보는 김혜성을 생각했는데 김혜성도 미국에 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타격이 완성형인 강백호를 꼽고 싶다. 어릴 때부터 경기를 뛰었기 때문에 그래도 가장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최형우도 열심히 안타를 치고 있다
(최)형우 형은 나이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너무 잘 치고 계신다. 대단하다. 또 그런 선배님이 있기 때문에 나도 힘이 되고 동기부여와 목표가 생긴다. 오랫동안 잘 해주셨으면 좋겠다.
-지금도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훈련 중인 후배들에게 조언을 건넨다면
할 수 있는 데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봐야 한다. 난 신체조건이 많이 부족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작은 체격을 커버할 수 있는 스윙을 많이 연구하면서 나만의 스윙을 만들었다. 포기하기보다 끝까지 준비하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빛을 낼 수 있다.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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