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을 낸 건 아니고…그린 라이트를 줬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전통적으로 빠른 야구와 거리가 멀었다. 장종훈, 김태균, 노시환으로 이어지는 거포 계보를 자랑하는 팀답게 장타에 의존하는 빅볼을 펼쳤다. 팀 도루 1위는 2001년(136개) 딱 한 시즌이었다.
카를로스 수베로 전 감독 시절 ‘실패할 자유’ 속에 적극적으로 뛰는 야구를 펼쳤지만 도루 성공률은 하위권을 맴돌았다. 전체적인 타선이 워낙 약하다 보니 뛰다가 죽을 때 리스크가 너무 컸다. 수베로 감독이 물러난 뒤 주자들을 최대한 묶어두는 안전한 야구로 노선이 바뀌었다. 지난 7일까지 한화는 팀 도루 9위(34개), 성공률 10위(63.0%)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번 주부터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김경문 감독 체제에서 한화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지난 7일 대전 NC전에서 2회 장진혁의 2루 도루 실패로 이닝이 끝났지만 3회 1사 1,2루 노시환 타석 때 초구부터 1루 주자 하주석과 2루 주자 김태연이 2~3루 더블 스틸에 성공했다.
NC 좌완 선발 다니엘 카스타노는 주자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고, 초구 변화구를 던진 사이 하주석과 김태연 모두 여유 있게 살았다. 최근 한화 야구에서 볼 수 없었던 기습적인 더블 스틸에 구장이 들썩였다. 한화는 2-6으로 패했지만 김경문 감독의 야구가 녹아들기 시작한 장면이었다. 김 감독은 두산, NC 시절 팀 도루 1위만 4번이나 할 정도로 공격적인 발야구를 추구했다.
8일 NC전을 앞두고 취재진을 만난 김 감독은 전날 더블 스틸에 대해 “내가 사인을 낸 건 아니다. 선수들한테 그린 라이트를 준 것이다”며 “맨날 상대가 뛰는데 우리는 왜 안 뛰냐는 말을 했다. 코치들에게 우리도 선수 누구누구 그린 라이트를 줘서 언제든 항상 뛰라고 했다. 상대가 세 번 뛰면 우리도 한두 번은 뛰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바로 직전 이닝에 도루 실패 이후 성공한 더블 스틸이라는 점이 더욱 인상적이다. 김 감독은 “뛰어야 한다. 선수들은 (도루 실패로) 죽고 나면 눈치를 보는데 그거 죽었다고 주춤거리면 과감성이 떨어진다. 도루는 결과론을 갖고 접근하면 선수가 위축된다”며 장진혁이 아웃된 것에 대해선 “상대(김형준) 송구가 원가 좋았다. 상대가 잘한 건 어쩔 수 없다. 상대를 칭찬하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더블 스틸로 이어진 1사 만루에서 안치홍이 3루 땅볼로 물러난 뒤 채은성의 잘 맞은 직선타가 좌익수 정면으로 향해 득점 없이 끝난 게 아쉬웠다. 김 감독은 “좋은 찬스에 점수를 못 내면서 흐름이 넘어갔다. 은성이가 잘 친 게 정면으로 가면서 잡혔는데 저쪽 기가 더 셌다”며 “감독은 매일 이기고 싶지만 승부를 매일 이길 순 없다. 졌을 때는 뭐가 안 좋았는지 생각하면서도 빨리 잊어야 한다. 오늘 문동주가 나이스 피칭해서 좋은 경기하겠다”고 다짐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