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 (류)현진이 덕으로 금메달도 따고 큰일이 있었는데 다시 만나게 되니 너무 기쁘다.”
3일 오후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홍보관에서 취임식 및 기자회견을 가진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김경문(66) 신임 감독은 인사말을 하면서 류현진(37)의 이름부터 꺼냈다. 기자회견 내내 특정 선수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던 김경문 감독이 유일하게 입에 올린 선수가 류현진이었다.
이날 취임식에 류현진은 주장 채은성과 함께 선수단 대표로 참석해 꽃다발 전달했다. 류현진을 보며 환한 미소를 보인 김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류현진 관련 질문에 “아직 현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인사만 했다. 너무 반갑더라”며 “저녁에 (수원에) 도착해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많이 나누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선수단과 클럽하우스에서 일일이 악수하고 인사하면서 류현진에게 “이렇게 또 만나게 돼 반갑다. 우리 하나씩 하나씩 하자”며 어깨를 두드렸다.
그만큼 김 감독에게 류현진은 특별한 선수다. 한화를 넘어 대한민국 야구를 대표하는 선수이기도 하지만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9전 전승 금메달 신화 함께했던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당시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서 21세의 류현진이 에이스로 활약했다. 예선 캐나다전에서 9이닝 동안 127개의 공을 던지며 5피안타 3볼넷 6탈삼진 무실점으로 1-0 완봉승을 거둔 류현진은 결승 쿠바전에도 122구를 뿌리면서 8⅓이닝 5피안타 2볼넷 6탈삼진 2실점으로 금메달 확정 경기에서 선발승을 따냈다.
한국 야구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그 영광의 순간을 김 감독과 류현진이 같이 공유하고 있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류현진은 11년간 메이저리그를 거쳐 올 시즌을 앞두고 한화에 돌아왔고, 김 감독도 두산에서 NC 그리고 국가대표팀 감독을 거쳐 시즌 도중 한화에 부임했다.
16년 만에 돌고 돌아 대표팀에 이어 한화에서 다시 한 팀이 됐다. 세월이 많이 흘러 류현진은 어느새 37세 베테랑이 됐고, 66세의 최고령 사령탑이 된 김 감독은 백발이 성성한 나이가 됐다. 하지만 16년 전 젊을 때 금메달을 합작한 것처럼 한국시리즈 우승이란 큰 목표를 향해 다시 동행한다.
류현진은 신인이었던 2006년 한국시리즈를 경험했지만 삼성에 1승4패1무로 무릎 꿇으며 준우승에 만족했다. 이후 2012년까지 한화에서 뛰었지만 2007년 플레이오프를 끝으로 가을야구에도 오르지 못했다다.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시절인 2018년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선발투수로 올랐지만 우승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김 감독은 더 안타깝다. 두산 시절인 2005년, 2007~2008년 3차례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마지막 우승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05년 삼성에 4전 전패했고, 2007~2008년 두산에선 숙적이었던 SK에 각각 2승4패, 1승4패로 졌다. 신생팀 NC로 옮겨 1군 4번째 시즌이었던 2016년 다시 한국시리즈 문을 두드렸지만 전 소속팀 두산에 4전 전패를 당했다. 감독 통산 승수가 896승으로 역대 6위에 빛나지만 500승 이상 거둔 13명의 감독 중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다.
우승의 한을 품고 있던 김 감독은 한화에서 마지막 기회를 잡았다. 60대 중반인 김 감독의 나이를 볼 때 한화가 마지막 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18년 6월3일 NC에서 물러난 뒤 정확히 6년 만에 한화 감독으로 취임한 김 감독은 “바깥에 있으면서 여러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잘했던 것보다 부족하고, 아쉬웠던 부분들이 많았다”며 “아쉬운 부분은 아실 것이다. 2등이라는 것이 나 자신에게는 많은 아픔이었다. 이곳 한화 이글스에서 팬들과 함께 우승에 도전하겠다. 꼭 우승을 하고 싶다”고 강한 열망을 드러냈다.
물론 우승이 말처럼 당장 이뤄지는 건 아니다. 3일 현재 한화는 24승32패1무(승률 .429)로 8위에 처져있다. 5위 SSG(29승28패1무 승률 .509)와는 4.5경기 차이로 못 따라잡을 격차는 아니지만 우승권과는 거리가 있다. 김 감독도 “지금은 팀이 밑에 있는데 먼저 5할 승률을 맞추는 게 우선이 아닐까 싶다. (올해는) 포스트시즌에 초점을 맞춰 성적이 올라오면 그 다음을 생각하겠다”며 내년 시즌을 정상 등극 도전의 해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