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면서 제 엉덩이를 확 때리더라구요. 봤죠? 이러면서…”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내야수 김태연(27)는 지난 29일 대전 롯데전에서 1회초 1루 수비 때 기막힌 센스를 보였다. 상대 주자의 발이 베이스에서 아주 잠시 떨어진 틈을 놓치지 않고 태그하며 견제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상황은 이랬다. 1사 1루 고승민 타석에서 초구를 앞두고 한화 투수 황준서가 1루 견제구를 던졌다. 발 빠른 1루 주자 황성빈을 의식한 견제구였지만 리드 폭이 길지 않았던 황성빈이 거의 베이스에 붙은 상태에서 귀루했다. 보통 같으면 1루수가 다시 투수에게 공을 던지는 루틴 플레이가 이어지는 상황.
그런데 여기서 김태연의 기지가 빛났다. 왼손에 낀 미트로 받은 공을 오른손으로 빼더니 슬며시 황성빈의 왼쪽 허벅지 뒤를 찍었다. 황성빈의 발이 베이스에서 살짝 떨어진 찰나의 순간 놓치지 않은 것이다.
1루심은 세이프를 판정했지만 김태연은 1루 덕아웃을 향해 비디오 판독을 해달라는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정경배 한화 감독대행은 잠시 고민했다. 덕아웃에선 아웃으로 보기 어려웠고, 1회 시작부터 비디오 판독을 쓰기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KBO 비디오 판독은 각 팀당 9회 정규이닝 기준으로 경기당 2회씩 요청 가능하며 두 번 모두 번복되면 한 번의 판독 기회가 추가로 주어진다. 1회부터 확실하지 않은 판정에 비디오 판독을 섣불리 쓰기도 애매했다.
하지만 김태연이 워낙 확신을 갖고 강한 액션으로 요청하면서 정경배 대행도 받아들였다. 그 결과 황성빈의 발이 베이스에서 잠시 떨어진 순간 김태연이 태그한 것이 확인됐다. 아웃으로 판정이 번복되면서 1사 1루가 2사 주자 없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김태연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덕아웃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반면 황당하게 아웃된 황성빈은 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30일 롯데전을 앞두고 취재진을 만난 정경배 대행은 이 상황에 대해 “덕아웃 안에선 (아웃인지 세이프인지) 안 보였다. 태연이가 너무 (비디오 판독을) 해달라고 해서 하긴 했다. 세이프인 줄 알았는데 아웃이더라”며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태연이가 (이닝 끝나고) 지나가면서 내 엉덩이를 확 때리더라. ‘봤죠?’ 이러면서”라며 웃어 보였다.
이어 정 대행은 “1회부터 비디오 판독을 쓰기 아까워서 고민했다. 그런데 슬로 비디오로 자세히 보니 아웃일 수 있겠다 싶더라”며 “선발 황준서가 (불펜 피칭 때부터) 투수코치가 볼이 안 좋다고 했는데 1회에 보니 진짜 안 좋더라. 스피드가 안 나오고, 컨트롤도 안 좋아서 어떡하지 했는데 황성빈이 죽었다. 그게 좀 결정적이었다”고 김태연의 센스를 칭찬했다.
경기 극초반이긴 했지만 제구 흔들리던 선발 황준서에게도 큰 힘이 된 수비로 김태연의 순간 집중력과 센스가 빛난 장면이었다. 1회를 잘 넘긴 황준서는 6이닝 2피안타 5볼넷 6탈삼진 무실점으로 승리했고, 경기 후 “태연이형이 수비에서 많이 도와줘 고맙다”고 말했다.
한편 정 대행 체제에서 2경기 연속 승리하며 최근 4연승 포함 8경기 7승1패로 기세를 이어간 한화는 이날 좌완 선발 김기중을 내세워 시리스 스윕과 5연승을 노린다. 타선은 롯데 우완 선발 나균안을 맞아 김태연(우익수) 요나단 페라자(좌익수) 노시환(3루수) 안치홍(1루수) 채은성(지명타자) 이도윤(유격수) 최재훈(포수) 황영묵(2루수) 장진혁(중견수) 순으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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