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같은 분은 못 봤다. 앞으로도 못 볼 것 같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지난 27일 최원호(51) 감독과 함께 박찬혁(52) 대표이사의 동반 사퇴를 발표했다. 4월말부터 성적 부진으로 압박을 받은 최원호 감독의 경우 그 전날 밤 결별 소식이 알려졌지만 박찬혁 대표이사의 사퇴는 미처 예상 못한 일이었다.
박 전 대표는 현장과 프런트 모두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동반 사퇴를 결심했다. 손혁 단장도 같이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박 전 대표가 “누군가 남아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며 만류시켰다. 책임을 따로 전가하지 않고 프런트 수장으로서 자신이 이 모든 책임을 짊어진 것이다.
한화 선수단은 최 전 감독과 함께 박 전 대표의 사퇴 소식에 무척 놀랐다는 후문. 그 중에서도 주장 채은성(34)은 마음이 더 좋지 않았다. 지난 2022년 11월 FA 자격을 얻어 6년 90억원에 한화와 계약하며 팀을 옮길 때 박 전 대표가 있었다. 협상을 이끈 건 손혁 단장이었지만 실질적인 주체는 박 전 대표였다.
지난 28일 대전 롯데전을 앞두고 선수단 대표로 취재진을 만난 채은성은 “감독님도 너무 좋으신 분인데 사장님도 너무 안타깝다. FA를 하면서 사장님을 처음 뵀다. 그동안 여러 사장님들을 봤지만, 박찬혁 사장님 같은 분은 못 본 것 같다. 앞으로도 못 볼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채은성은 “사장님은 선수들한테 너무 진심이셨고,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주셨다. ‘어떻게 하면 선수들이 잘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항상 하셨고, 선수들과도 의견을 많이 나누셨다. 어떻게 하면 좋은 분위기가 될지도 항상 고민하고 지원해주셨는데 (물러나셔서) 아쉽다”며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2020년 11월 이글스 최초 40대 대표이사로 부임한 박 전 대표는 구단 쇄신에 팔을 걷어붙였다. 프런트의 전문성을 강조하며 역량 강화에 집중했고, 스포츠 마케팅 전공을 살려 다양한 기획으로 구단 팬덤을 크게 끌어올렸다. 여러 스폰서십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이며 구단 수입도 늘렸다.
이를 고스란히 선수단 전력 강화, 인프라 확충에 재투자했다. 선수단 의견을 구해 대전 홈구장 클럽하우스 등 각종 편의시설을 리뉴얼하며 연한이 남아있던 구단 버스도 최신식으로 바꿨다. 원정시 선수단에 1인1실 숙소를 제공했고, 저연차 선수들을 위한 방망이와 글러브 지원도 확대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박 전 대표 명의로 60여개의 스마트 워치를 선수단에 선물했고, 시즌 후 고참들을 집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27일 자신의 SNS를 통해 “지난 3년간 선수단과 직원들 모두 어려운 시기에 혼신을 다해 노력해줬고, 우여곡절 속에서도 각 단계별로 많은 성장을 이뤄왔다. 올 시즌은 이 성장을 증명해 나가야 하는 출발점으로써 중요한 시기이지만 계획과 달리 시즌 초반 부진으로 기대하셨던 팬분들께 죄송스럽다. 우리 선수단과 임직원에게도 조직의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이에 반등 기회를 남겨둔 시점에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한화에 와서 2년 연속 시즌 중 감독이 바뀌는 사태를 겪은 채은성은 “결국 선수들이 못해서 이런 결과가 난 것이다. 좋은 결과가 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를 탓할 수 없다”며 “아직 경기가 많이 남았고, 포기할 단계도 아니다. 감독님, 사장님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서 우리가 목표한 대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자는 얘기를 선수들끼리 했다. 선수들은 계속 야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잠시만 슬퍼하고 오늘 경기를 이기자고 했다. 더 잘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우리 선수들의 도리”라고 이야기했다.
이날 한화는 선발 문동주의 6이닝 3실점 호투와 장단 15안타가 터진 타선의 힘으로 12-3 대승을 거뒀다. 3연승을 거두며 최근 7경기 6승1패로 반등세를 이어갔다. 채은성도 1회 선제 적시타 포함 4타수 2안타 2타점 1볼넷으로 활약했다. 최근 5경기 연속 안타로 초반 부진을 딛고 타격감을 바짝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