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이 안 나는데도…3연투 한 번 안 하고 떠난 감독, 눈물 흘린 40년 지기 대행은 '기조' 이어간다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24.05.29 05: 50

“밖에서는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지난 27일 최원호 감독과 박찬혁 대표이사가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동반 사퇴했다. 최근 6경기에서 5승1패로 상승세를 타며 8위로 뛰어오른 시점에 이뤄진 깜짝 인사 조치. 4월말부터 흉흉한 소문이 나돌긴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감독과 대표이사가 동시에 물러날 것이라곤 예상 못했다. 
하루아침에 수석코치에서 감독대행으로 신분이 바뀐 정경배(50) 대행의 마음도 복잡했다. 정 대행은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최 전 감독의 부름을 받고 SSG를 떠나 한화 수석코치로 왔다. 인천고 동기동창으로 40년 지기 친구 사이기도 하다. 친구가 떠난 자리에 대행으로 앉은 것 자체가 정 대행에겐 너무 불편했다. 

한화 최원호 감독(오른쪽)과 정경배 수석코치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4.03.09 / dreamer@osen.co.kr

한화 정경배 감독대행이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2024.05.28 / ksl0919@osen.co.kr

지난 26일 문학 SSG전이 우천 취소된 뒤 최 전 감독의 퇴진이 결정됐고, 정 대행은 인천에서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누군가 새 감독이 오기 전까지 현장에 남아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구단은 물론 최 전 감독도 뒷수습을 부탁했고, 정 대행도 어려운 자리를 맡기로 했다. 최 전 감독이 마지막 작별 인사를 위해 28일 대전 롯데전을 앞두고 구장에 왔을 때도 감독실에서 따로 시간을 갖기도 했다. 
훈련을 마치고 1루 덕아웃에서 30명에 가까운 취재진에 둘러싸인 정 대행은 최 전 감독 이야기가 나오자 잠시 침묵했다. 말을 쉽게 잇지 못한 정 대행은 목이 메인 듯 떨리는 소리로 “감독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내가 조금 더 잘 했어야 했고, 도움이 됐어야 했다. 코치 생활하면서 감독님이 중간에 나가신 게 두 번째인데 많이 울었다. 40년 지기 친구이기도 하다. 미안한 마음이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다. 
이어 정 대행은 “팀이 최근 상승 분위기라 (퇴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감독님이 힘들다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코칭스태프나 선수단도 예상을 못한 일이다”며 “갑작스럽게 들었고, 지금은 내가 따로 수석코치를 임명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각 파트 코치들과 상의하면서 운영하려 한다”고 밝혔다. 
한화 정경배 수석코치, 최원호 감독이 캠프 출국 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4.01.30 / ksl0919@osen.co.kr
한화 정경배 감독대행이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2024.05.28 / ksl0919@osen.co.kr
현장 리더십이 바뀌면 팀에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다만 한화는 외부에서 새 감독 선임 작업을 진행 중이고, 한시적인 대행 신분상 정 대행이 자신의 색깔을 내기도 어렵다. 어떻게 팀을 이끌 것인지에 대해 정 대행은 “감독님이 만들어놓은 기조가 있다. 내가 뭔가 바꿀 수 있는 건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정 대행은 “밖에선 (어떻게 볼지) 잘 모르겠지만 안에선 감독님이 팀을 잘 만들어놓으셨다고 생각한다. 그 기조에 의해 잘할 수 있도록 하겠다. 나도 (팀을 이끈) 경험이 없으니까 지금 뭐라고 말씀드리진 못하겠지만 감독님이 만들어놓은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비록 결과를 내지 못했지만 최 전 감독은 지난 2020년 한화 퓨처스 감독을 맡을 때부터 체계적인 선수 관리 및 육성을 강조했다. 계획대로 다 되진 않았지만 적어도 투수 관리 기조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올해 10개 구단 중에서 유일하게 불펜투수 3일 연투가 없는 팀이 한화다. 2일 연투도 37번으로 두 번째 적다. 항상 투수들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의사를 물어봤다. 3연투를 대기한 경우는 몇 번 있었지만 결국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한화 최원호 감독이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24.03.23 /jpnews@osen.co.kr
한화 최원호 감독이 황준서를 보며 미소 짓고 있다. 2024.03.31 / soul1014@osen.co.kr
팀 성적이 떨어진 뒤에도 최 전 감독은 불펜 필승조를 무리하게 쓰지 않았고, 문동주나 황준서 같은 어린 투수들이 투구수 빌드업이 되지 않았을 때는 이른 개수에 교체하기도 했다. 어떤 면에선 지나치게 선수를 과보호하면서 승부를 걸지 못한다는 느낌을 줬지만 어려운 상황에도 투수 관리 철학은 흔들리지 않았다. 
감독은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자리이고, 어느 때보다 기대치가 높아진 올 시즌 최 전 감독의 기조는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감독이 오기 전까지 40년 지기가 그 기조를 이어받아 중간 전달자 역할을 한다. 정 대행은 향후 팀 방향에 대해 “그 부분은 나도 모른다. 새 감독님이 오시기 전까지 선수들이 동요하지 않게끔 이끌겠다”고 밝혔다. 
최 전 감독이 선수단에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난 28일 롯데전에서 한화는 문동주의 6이닝 3실점 퀄리티 스타트 호투와 요나단 페라자의 홈런 포함 4안타 폭발 속에 12-3로 이기며 3연승을 달렸다. 문동주는 “조금 더 빨리 잘했어야 했는데 감독님께 죄송하다. 감독님께 배운 것이 많은데 잘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페라자는 “최원호 감독님과 짧은 시간이었지만 야구뿐만 아니라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받아 감사한 마음이다. 다음 발걸음에 축복이 있으시길 기도하겠다”고 전했다. 
한화 정경배 감독대행이 승리 후 채은성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2024.05.28 / ksl0919@osen.co.kr
한화 최원호 감독(왼쪽)이 페라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04.24 / ksl0919@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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