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LG 트윈스가 키우고 있는 ‘거포 유망주’ 김범석(20)은 타고난 타격 재질로 주목받고 있지만 포지션이 포수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주전 포수 박동원이 지난 11일 사직 롯데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한 뒤 김범석이 선발 마스크 쓸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지난 12일 사직 롯데전, 14·16일 잠실 키움전 3경기를 끝으로 김범석은 선발 포수로 나서지 않고 있다. 최근 9경기 연속 베테랑 허도환이 선발 포수로 나서면서 김범석은 1루수나 지명타자, 경기 후반 여유 있는 상황에서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다.
염경엽 LG 감독은 미래 육성을 위해 포수 김범석의 비중을 조금씩 높이고 싶었지만 상황이 맞지 않았다. 박동원이 빠진 사이 팀이 4~5위로 살짝 처졌고, 여러 투수들이 경험 많은 포수와 호흡을 맞추고 싶어했다. 투수진이 흔들리던 시기라 의견을 안 들을 수 없었다.
염경엽 감독 스타일상 외국인 투수들이 나오는 날은 김범석을 선발 포수로 내세울 법했다. 하지만 케이시 켈리와 디트릭 엔스 모두 성적이 좋지 않아 생존 경쟁을 하고 있는 처지였다. 염 감독은 “외국인 투수들이 끌고 가는 상황이면 범석이를 써도 되는데 지금 두 투수 모두 코너에 몰려있다 보니 여유가 없다. 범석이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고집대로 하는 건 좋은 상황이 아닌 외국인 투수들에게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마음 같아선 김범석의 포수 비중을 늘리고 싶지만 이런 팀 상황과 맞물려 염 감독도 계획을 잠시 접었다. 지난주 박동원이 무릎 부상에서 복귀했고, 이번 주부터는 포수를 볼 예정이라 당분간 김범석이 마스크를 쓰는 일이 많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포수 김범석은 포기할 수 없다. 염 감독도 “우리 팀에는 이재원이라는 카드도 1루에 있다. 범석이와 재원이를 1루에서 겹치게 할 순 없다. 범석이가 포수를 해서 재원이와 같이 커주면 우리 팀에는 20홈런 우타 거포가 둘이나 생긴다. 그럼 앞으로 타선의 좌우 밸런스가 엄청나게 좋아진다”고 기대했다.
단지 팀 구성 때문에 포수 김범석을 포기 못하는 게 아니다. 그의 포수 재능을 알아본 투수도 있다. LG 최고참 필승조 투수 김진성(39)은 지난 12일 사직 롯데전에서 선발 포수로 나온 김범석과 7회 첫 호흡을 맞췄다. 3-4로 뒤진 1사 만루 위기에서 김범석이 마운드를 방문하며 김진성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김범석이 성큼성큼 다가오자 김진성이 마운드에서 내려와 입을 가리고 대화를 했다.
1985년생 김진성과 2004년생 김범석은 무려 19살 차이가 난다. 그런데 김범석이 뭔가 대화를 이끌고 주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김진성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김진성은 김민석을 6구째 포크볼로 1루 땅볼을 유도, 3-2-3 병살타로 위기를 실점 없이 넘겼다. LG는 8회 3점을 내며 6-4로 역전승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김진성은 “범석이가 마운드에 올라오더니 ‘적극적으로 승부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더라. 그래서 ‘네 생각대로 따를게. 오케이’라고 했다. 범석이가 잘해줘서 막을 수 있었다. 내 생각대로 던졌으면 아마 맞았을 것이다”고 돌아봤다.
19살이나 어린 경험 부족한 포수를 믿고 따르는 게 쉽지 않다. 위기 상황에서는 베테랑 투수가 볼 배합을 주도하곤 하지만 김진성은 달랐다. “그날 범석이가 경기에서 하는 행동이나 마운드에서 올라오는 모습을 봤다. 먼저 마운드에 올라와서 이야기하는 걸 보니 ‘믿어도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범석이 하고 싶은 대로 따라간 것이다”는 게 김진성의 말이다.
그 이후 김범석과 다시 호흡을 맞춘 적이 없지만 김진성에겐 여전히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는 “범석이에게서 초짜 포수 티는 안 났다. 다음에도 같이 한다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형이 따라갈게’라고 할 거다”며 믿음을 보인 뒤 “(덩치가 커서) 타깃도 좋다”면서 김범석의 포수로서 타고난 피지컬도 치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