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구단이라는 수원 삼성의 감독 경질 방법은 '길바닥 사퇴'였다.
염기훈 감독은 2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2 2024 15라운드 맞대결에서 수원이 서울이랜드FC에 1-3으로 패하자 팬들 앞에서 자진 사퇴를 발표했다.
이랜드전 패배로 수원은 리그 5연패에 빠졌다. 승점 19, 6위 제자리걸음을 했다. 다이렉트 승격 목표와 멀어지고 있다. 수원은 전반 41분 뮬리치의 선제골로 앞서갔지만, 후반 막판 내리 3골을 헌납하며 역전패했다.
결국 팬들은 뿔났다. 경기 후 홈 응원석에 있던 팬들은 염기훈 감독을 향해 여러 차례 “나가”를 외쳤다. 수원 버스 출구 펜스 밖에도 성난 팬들로 가득했다. 이들은 퇴근할 염기훈을 기다리며 “나가라”를 외쳤다. 일부 팬들은 수원에 승리를 안긴 이랜드의 선수단 버스가 지나가자 박수를 치기도 했다.
수원에서만 13시즌을 뛰며 333경기 49골-87도움을 올린 염 감독은 구단 레전드로 통한다.
지난해 플레잉코치였던 그는 김병수 감독이 경질되자 감독 대행을 맡았지만 강등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수원의 1부리그 승격이란 목표를 갖고 2부리그에서 계속 지휘봉을 이어갔다.
염기훈호 수원은 한 때 4연승을 달리며 선두권에 자리했다. 하지만 5연패에 빠지며 순위가 하락했다.
이랜드와 경기를 마친 뒤 성난팬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수원 구단 버스를 기다렸다. 한 시간 가량 지난 후 염기훈 감독은 버스 통로를 걸어서 나왔다. 박경훈 단장과 구단 프런트와 함께 걸어 나온 염 감독은 감독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죄송하다. 경기 끝나고 단장님 찾아가서 떠나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했다. 제가 2010년에 수원 와서 많은 사랑과 질타를 받았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저에 대한 팬분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고 있어서 마음이 아프다. 이젠 우리 선수들한테 더 큰 응원을 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오랫동안 수원에 있었다. 울기도 많이 울고, 웃기도 많이 웃었다. 마지막에 이런 모습을 팬분들에게 보여드려 죄송하다. 이젠 뒤에서 수원과 팬분들을 응원하겠다. 웃으면서 떠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죄송하다. 제가 모든 책임 지고 떠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울먹거린 염기훈 감독은 "그동안 감사했고 죄송했다. 수원에 있으면서 행복했다. 다음에 또 인사드리겠다”라며 말을 마쳤다.
박경훈 단장은 “첫 지도자로서 성공을 시키지 못하고 염기훈 감독을 보낸 것에 마음 아프다”라며 코치진 전원 사퇴 여부를 묻는 질문엔 “생각해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이렉트’ 승격 목표에도 불구하고 구단이 염기훈 감독에게 미미한 서포트만 했단 시선엔 “전혀 그렇지 않다. 항상 감독이 원하는 부분을 해줬다”라고 반박했다.
명문 구단이라고 자부하는 수원 삼성은 염기훈 감독 포함 최근 5명의 감독을 갈아 치웠다. 특히 이날은 최악의 행보까지 선보였다. 단장과 대화 끝에 내린 결론이 버스통로를 걸어 나와 경기장 한 켠에서 '자진사퇴'를 선언한 것. 감독은 차치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매너도 잃어 버린 행태였다.
온라인을 통해 상황을 지켜본 K리그 복수 관계자들은 안타까운 심정을 숨기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자진 사퇴를 결정했더라도 버스를 가로 막고 있는 팬들 앞에서 사퇴를 발표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퇴 결정을 했다면 공식적인 발표를 하겠다고 설명하는 것이 먼저 아닌가?"라며 반문한 뒤 "한국 프로축구의 최상위 리그 구단이 저런 결정을 내린 것의 의문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라고 덧붙였다. / 10bird@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