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에서 요즘 가장 기대되는 타자는 김태연(27)이다. 지난겨울 결혼식을 올렸지만 신혼여행을 미루면서 야구에 집중한 노력이 빛을 보고 있다.
김태연은 지난 21일 대전 LG전에 1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 3회 3-0으로 달아나는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상대 선발투수 케이시 켈리의 3구째 바깥쪽 높게 들어온 시속 144km 직구를 밀어쳐 우월 솔로포로 장식했다. 비거리 110m, 시즌 4호 홈런. 개인 통산 19호 홈런인데 우측으로 밀어 넘긴 건 처음이었다.
김태연의 타격감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는 홈런이었다. 4회와 8회 볼넷으로 걸어나가며 3출루 경기를 펼친 김태연의 활약에 힘입어 한화는 8-4로 승리, 지난 3월31일 대전 KT전 7연승 이후 무려 51일 만에 2연승을 달성했다. 침체된 분위기를 딛고 반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날 한화는 주장 채은성이 허리 염좌를 극복하고 1군엔트리에 복귀했지만 김태연을 빼지 않았다. 아니, 뺄 수가 없었다. 외국인 타자 요나단 페라자를 제외하면 팀 내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를 벤치에 앉힐 수 없었다. 채은성이 우익수로, 안치홍이 1루수로 들어가면서 김태연이 지명타자로 출장했다.
김태연은 올 시즌 34경기에서 타율 3할3푼7리(86타수 29안타) 4홈런 18타점 14득점 15볼넷 12삼진 출루율 .447 장타율 .547 OPS .994를 기록하고 있다. 규정타석에 들지 못했지만 100타석 이상 소화한 타자 84명 중 타율 5위, 출루율 4위, 장타율 10위, OPS 4위. 홈런 공동 1위(14개)에 오르며 부활한 KT 강백호(.977)보다 높은 OPS로 엄청난 타격 생산력을 보이고 있다.
시즌 초반에는 주로 좌투수가 나올 때 선발로 나오거나 대타로 출장 기회가 제한된 김태연이었지만 채은성이 지난달 손가락에 이어 이번 달 허리를 다쳐 빠진 사이 타격으로 가치를 증명해 보였다. 포지션은 1루수, 2루수, 우익수, 지명타자로 계속 바뀌고 있지만 타선에선 붙박이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1루수, 지명타자 자리를 나눠맡는 거액의 FA 듀오 채은성과 안치홍 사이에서 살아남아 스스로 자리를 쟁취했다.
제한된 출장 기회 속에서도 김태연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그는 “순간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연습할 때부터 공 하나에 조금 더 집중한다. 그렇게 하나하나 집중력을 유지하다 보니 경기할 때도 잘되는 것 같다”며 “(초반부터 잘하기 위해) 페이스를 빠르게 당기려고 노력도 했고, 그에 맞물려 시즌 초반 운이 좋았다. 결과가 나오면서 자신감이 더 붙다 보니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도입된 ABS(자동투구판정시스템)도 김태연에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심판님들도 고생을 하고 계시지만 사람이다 보니 볼을 스트라이크로, 스트라이크를 볼로 판정할 수도 있다. ABS는 일정하게 판정하다 보니 내가 칠 수 있는 공과 아닌 공을 나눠서 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삼진도 줄면서 존이 확실해졌다. 내가 방망이를 냈을 때 맞을 것 같은 공만 치는데 그게 대부분 스트라이크다. ABS가 구장마다 다르다고 하지만 그렇게 다 신경쓰면 멘탈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런 건 최대한 신경쓰지 않는다”는 게 김태연의 설명이다.
자신만의 존이 확실해지면서 삼진율(11.5%), 헛스윙률(6.6%)이 커리어 최저 수준으로 줄었다. 낮은 공도 잘 참기 시작하면서 볼넷률(14.4%)이 팀 내 1위이자 리그 전체 6위로 늘었다. 김태연의 활약이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유다.
지난겨울 결혼을 했지만 시즌 준비에 집중하기 위해 대전에 남아 운동을 이어갈 만큼 독하게 준비한 보람이 있다. 앞서 2년간 시즌 초반이 좋지 않아 어느 때보다 빠르게 페이스가 올라오게끔 맞춘 김태연은 “신혼여행 안 가서 결과가 좋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그런 마음가짐을 하늘에서 좋게 봐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결혼 효과도 있다.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와이프가 배려하며 내조해준 덕분이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최근 7경기 중 6경기를 1번타자로 나서며 9경기 연속 안타 행진 중인 김태연은 “지금 내가 타순이나 그런 걸 가리면서 나가야 할 상황이 아니다. 경기에 나갈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나가야 한다. 지금 잘 맞고 있으니 한 타석이라도 더 들어가는 게 좋다. 수비도 어딜 가든 부담이 없다”며 “기록이나 숫자는 목표로 삼지 않고 있다. 남은 시즌 안 다치고 경기 나갈 때마다 최대한 좋은 퍼포먼스를 내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