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글러브 2루수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외야로 포지션을 옮겼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차라리 2루에서 경쟁했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상황이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20일 내야수 정은원(24), 외야수 이원석(25), 투수 한승주(23)를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공식 포지션은 내야수로 분류돼 있지만 대부분 경기에 외야수로 뛰고 있는 정은원의 이름이 눈에 띈다.
정은원에겐 시즌 두 번째 2군행. 개막 엔트리에 들어 1번타자 좌익수로 시작했지만 지난달 8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당시까지 9경기 타율 1할4푼3리(21타수 3안타) 4볼넷 6삼진 출루율 .280 장타율 .286 OPS .566으로 2군행에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17일간 2군에서 조정을 거쳐 지난달 25일 1군 복귀한 정은원은 타격 준비시 손의 위치를 내려놓는 식으로 폼에 변화를 줬다. 마인드도 바뀌었다. 경기 중에도 계속 얼굴에 미소를 띄며 마인드 컨트롤했고, 조금씩 타격감을 잡는 듯했다. 지난달 28일 대전 두산전부터 이달 3일 광주 KIA전까지 4경기 연속 안타를 쳤다. 특히 3일 KIA전에선 1-0으로 앞서던 5회 상대 선발 황동하에게 우월 투런 홈런을 터뜨리면서 팀의 4-2 승리를 이끌었다.
모처럼 수훈 선수로 선정된 정은원은 “인생도 야구도 계속 순탄하게 해왔다. 처음으로 순탄치 않은 상황들을 많이 겪으니 힘들었고, 여러 복잡한 감정도 많이 들었다”며 “(신인 때부터) 경쟁 없이 자리잡았다. 계속 경기를 나가다 보니 스스로 안주했다. 작년부터 경쟁을 하면서 신인 때로 돌아간 느낌이다. 이겨내야 더 발전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묵묵하게, 열심히 밝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타격감을 이어가지 못했다. 지난 3일 KIA전부터 좌익수였던 포지션이 중견수로 바뀌어 5경기 연속 선발로 나갔는데 아무래도 낯선 수비 포지션이다 보니 부담이 없지 않을 수 없었다. 8일 사직 롯데전에선 5회 1사 1루에서 박승욱의 중전 안타 타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포구 실책이 나왔다.
11일 키움전에선 다시 좌익수로 들어갔는데 두 번의 아쉬운 타구 판단 미스가 있었다. 2회 고영우의 높이 뜬 타구에 첫발 스타트가 뒤로 가며 안타를 내줬고, 6회 로니 도슨의 라인드라이브 타구에도 주춤하다 2루타를 허용했다. 그동안 큰 실수가 없었는데 중견수로 뛰다 돌아온 날 타구 판단이 크게 흔들렸다.
이날부터 7경기에서 12타수 1안타로 살아날 것 같았던 타격감이 완전히 떨어졌다. 선발 라인업에 들어갔다 빠졌다를 반복하며 쓰임새가 애매해졌고, 결국은 다시 2군행 결정이 내려졌다. 올 시즌 성적은 27경기 타율 1할7푼2리(64타수 11안타) 1홈런 6타점 13볼넷 16삼진 출루율 .312 장타율 .297 OPS .609. 여전히 선구안이 좋아 출루율은 타율 대비 1할4푼이나 높지만 외야수로서 생산력이 너무 떨어진다.
지난 2021년 한화가 배출한 최초의 순수 2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구단의 자랑이 된 정은원이었지만 이후 하락세를 거듭했다. 지난해 문현빈이라는 당돌한 신인이 들어와 시즌 후반 2루 자리를 꿰찼다. 시즌 후에는 FA 2루수 안치홍까지 영입되자 정은원은 생존 경쟁을 위해 외야 겸업에 나섰다. 2루를 완전히 버린 건 아니었지만 외야에 더 비중을 뒀다.
올 시즌 한화가 처해있는 상황을 보면 외야 겸업보다 차라리 2루에서 제대로 경쟁을 붙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시범경기 때 2루수로 1경기만 나온 안치홍이 개막 후 1루수와 지명타자로 번갈아 나서고 있고, 문현빈이 2루 붙박이로 들어갔다. 지난주 홈런 2개를 터뜨리며 반등 조짐을 보인 문현빈이지만 2군에 다녀오는 등 한 달 넘게 큰 부침을 겪었다.
물론 군입대를 앞두고 정은원이라 한화 입장에선 문현빈을 2루수로 키워야 하는 상황이긴 하다. 다만 포지션 변경 리스크를 감수한 정은원의 도전이 결실을 맺지 못하면서 차라리 2루에서 둘이 경쟁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결과론적인 해석도 나온다. 4경기 31이닝밖에 되지 않지만 2루수로서 올해 정은원의 움직임이 나쁘지 않았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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